너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 dearmyfreshmanself
- 1일 전
- 2분 분량

(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여기는 2025년 4월 30일.
편지를 받은 너는 2026년 4월 30일을 살고 있겠구나. 그동안 잘 지냈니?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쯤, 너는 또다시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겠지. 그곳은 오래전부터 꿈꿔온 뉴욕일까? 아니면 유럽? 어디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따뜻한 봄볕이 드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길었거든.
겨울이라고 하니, 2년 전쯤의 일이 생각난다. 너에게는 3년 전이려나. 영국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한 달간 혼자 유럽을 여행하던 그 시절 말이야. 그때는 날도 춥고 마음도 공허했지만, 발 닿는 대로 걷는 자유로움이 있었지. 그러다 생일은 꼭 제네바에서 보내겠다며 그곳으로 떠났고, 철창 너머로 유엔 본부 건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기억이 나. 제네바는 오랫동안 네 꿈의 도시였고, 그 꿈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미련이 부르는 곳이었어. 결국 너는 이듬해 네 남은 용기를 모두 걸고 다시 유엔에 도전해보기로 했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용기의 배경엔 아마 영국과 유럽에서의 일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 사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였겠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잘한 사건사고들이 많았어. 수없이 많은 것들을 보고 들으며 느낀 게 있다면, 하나는 적어도 다른 이들의 인식 속에서 우리는 이 사회의 바닥에 있다는 것, 또 하나는 보지 못한 나머지 반쪽의 세상을 보고 싶다는 것. 유럽인들의 눈에 비친 너는 그저 작은 동양인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여행 중 마주한 편견과 차별도 무시하기 어려웠지. 또 개도국에서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유럽만 다녀서는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유엔에서 일하겠다고 다짐한 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어. 다그 함마르셸드 전 유엔사무총장의 말처럼 유엔은 인류를 천국으로 이끄는 게 아니라 지옥에서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니까. 말은 멋져 보여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 가족도, 친구도 없는 낯선 땅에서 때론 평생 홀로 살아갈 각오가 필요할 수도 있어. 분쟁지역의 위험도 감수해야 할 수도 있고, 이상을 좇기 위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있을지 몰라. 하지만 너는 네 꿈에 네 모든 삶을 걸어보고 싶었어. 그렇게 너는 이듬해 서울의 작은 유엔 사무소에서 반년간 일했고, 이후 태국에 있는 유엔 사무소로 옮겼지.
태국에서의 삶은, 솔직히 말하면 쉽지 않았다, 그치? 에어컨 없는 버스를 타고 가며 독한 매연을 들이마실 때마다 생명이 줄어드는 것 같았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바퀴벌레며 쓰레기봉투에서 툭 튀어나오는 쥐를 보고 비명을 질렀지. 그렇게 귀국일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다가도, 어느 날 급정거하는 버스에서 넘어지던 너를 붙잡아준 태국인의 친절에 붙잡히고, 미얀마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국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세상의 질서에 대해 생각해보는 거야. 때로는 몇몇 백인들로부터 무시당하는 동양인들을 보며 오랜 상처가 국민 정서가 되고, 너무나 당연한 관념이 될 수 있음을 깨닫지. 그렇게 너는 수많은 삶의 모습을 보며 네가 이곳에 온 이유를 또다시 곱씹어보았어.
이제 너는 어디쯤 와 있을까? 네가 걷고 있을 길을 이곳에서 상상해 본다. 혹시 이방인의 삶이 여전히 낯설고 외로울지라도 그 모든 발걸음 위에 네가 쌓아 올린 용기를 기억해. 배우고, 성장하고, 너 자신을 아끼고 돌볼 줄 알며, 그렇게 여행자의 마음으로 세상을 누비며 또 한 번의 계절을 건너가길. 그리고 언젠가 다시, 너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기를.
네 모든 길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오늘은 너 자신에게도 꼭 그렇게 말해줘.
2025년 따뜻한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