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나에게.
안녕! 지금 뭐 해? 또 캔 맥주 까먹으면서 멍한 눈으로 과제하고 있니? 네가 과제하면서 마신 캔 맥주만 몇 개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널 비난하고 싶진 않아. 산책조차 큰맘 먹고 나가야 하는 이 시국에 네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 뿐이었겠지. 하향 지원한 강원대에만 붙은 것도 서러운데, 그마저도 비대면 수업으로 얼룩진 새내기 생활을 보내고 있을 너. 결국 원서를 들고 다른 학교를 기웃거리는 너. 넌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난 영원히 이 학교에 만족하지 못할 거야.'
글쎄. '사람 인생 알 수 없다.'가 평소 네가 자주 하던 생각이잖아. 네 인생이라고 예외는 아니더라. 너 말이야, 딱 일 년 만 버텨봐. '강원대 오길 잘했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다니까? 어라, 안 믿는 눈치네? 그럼 내가 앞으로의 너의 학교생활을 살짝 귀띔해 줄게. 뭐? 네가 뭔데 그걸 아냐고? 4년만 기다리면 알게 될 테니 기다려~
각설하고 2학년이 된 너는 드디어 강원대에 입성하게 돼. 동기들과의 첫 만남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하지. 그렇지만 큰 기대는 없어. 대학 친구는 비즈니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거든. 앞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한테 말해줘. '아닐 수도 있잖아?' 그래, 넌 그 동기들과 아주 끈끈한 사이가 돼. 함께 수업을 듣다가 수업이 끝나면 맛있는 음식을 시켜 먹고, 새벽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 잠에 들어. 방학이면 여행도 같이 가지. 여름날 바다로 떠났던 여행을 넌 잊지 못할 거야. 햇살이 어찌나 따가운지, 그럼에도 어찌나 행복한지. 파도에 가만히 몸을 맡긴 채 생각해. 수십 년 후에도 이 아이들과 함께 바다를 보고 싶다고. 꼭 그렇게 될 거야!
한 해가 지나 어느덧 3학년이 된 너는 중요한 직책을 하나 맡게 돼. 바로 학과 부학생회장이야. 놀랍지? 학창 시절에 반장 한 번 안 해본 네가 부학생회장이라니. 두려운 마음이 앞서려나. 그런 걱정은 넣어둬. 너 진짜 잘하니까. 물론 마냥 보람 차고 기쁜 날만 있진 않아. 밀려오는 업무에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날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용서를 빌며 고개를 숙인 날도 있지. 너무 힘들어서 부모님과 통화하며 엉엉 울기도 해. 그럼에도 넌 부학생회장이라는 긴긴 레이스를 무사히 완주해. 네 옆에서 힘이 되어준 학생회 사람들,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준 학우들과 교수님들, 사랑하는 가족과 남자친구 덕분임을 잊지 마. 그들에게 고맙다고 자주 말해주고. 난 지금도 그렇게 못한 게 마음에 걸리더라.
넌 강원대에서 4년을 지내면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들을 얻고 귀중한 경험들을 하며 단단해져 가. 휑했던 마음속에 중심이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하지. 강원대가 너와 나의, 네 인생과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거야. 하지만 중심이 싹을 틔웠을 때쯤 강원대와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할 거야. 두어 번의 계절만 지나면 이제 진짜 떠나야 하거든.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겠지. 그리고 아직은 모를 거야. 강원대에서 보낸 모든 시간들이 눈물 나도록 아름답다는걸. 그러니 더 즐기고 더 빛나야 해. 너무 눈이 부셔서 태양이 널 질투할 만큼. 너라면 잘할 거야. 항상 응원해. 그리고 사랑해.
널 누구보다 아끼는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