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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서 맘껏 너로 살아줘


넓고 시원한 대학정경,

그래.. 내가 바래온 자유를 혹시 선사해줄 것 같기도 하고,

     

수많은 발들, 모르는 눈동자 – 다시 수많은 발들

어디선가 들리는 봄날 참새 같은 사람들 대화 – 웃음소리

     

볕 드는 회색 건물

오묘하다

낯선 온기와 쿨함 그 어딘가에서

     

상처받은 스무살

확신이 없던 나에게

미지의 그 곳에 대한 첫인상은

결국 어떤 온도로 기억되었을 거 같니?

     

     

안녕 스무 살 보영아,

너는 잘 지내고 있니?

언 8년이 지난 시점에서 편지를 하는데

그 때의 너는 다시 되돌아보기에는

아픈 그래서 자주 되돌아볼 수 없다고 느껴

     

고등학교 때는

같은 가능성으로 봐주던 눈길들에

제대로 믿는 구석이 있는 당당함이 있었는데

     

1등급, 2등급, 3등급,........

마치 사회의 꼬리표를 딱 받아서

그거는 내가 아닌데 내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제대로 풀 죽어 있었지, 다시 대학을 가야 하나? 아니 현재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며 잘하면 되지 않을까? 등등

그 꼬리표 하나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진짜 ‘혼란’이라는 단어가 가장 그 시절을 잘 표현했네

     

근데 있지,

네가 지금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한 그 길, 그 숲

사실 정말 잘못 들어온 게 아니야

     

다 이유가 있어서라면 그 때의 너는 이해할 수 있을까

     

이십대를 그냥 ‘서핑 타는 시기’라고 생각해봐

어디서 물결이 치고 들어올지 모르는

모르는데 그냥 그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하는

혼란스러운 게

그냥 이십대는 기본값이더라고

     

자, 근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청춘의 서핑을 할 때

외려 대학 생활이 있어서

좋은 도움을 받았던 거 같아서 한번 얘기해볼게

     

1) 우선 대학시절 내내 시간이 그래도 자유롭잖아?

그때 동안 너는 정말 좋아하는 재능을 발굴하고

다이아몬드로 깎아내는 피땀의 시간들을 가졌어

 

2)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탐색하던 시절, 교양 수업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잖아

점심 먹고 좋아하는 음료 사 갖고 들어가서 대강당에 유유자적하게 들어가 앉아서 깜깜한 대강당에서 미술 작품 볼 수 있게 해주는 ‘미술 교양 수업’이랑 ‘철학이나 연극 등 인문대 교양 수업’을 들었는데

이 때 정말로 집에 있는 것보다 학교에 있는 게 더 재밌고 힐링 된다고 느꼈어 아직도 이 때만 떠올리면 행복해

     

3) 나에겐 찾아올 것 같지 않던 첫사랑, 그 외에도 학우들, 동아리 멤버들이랑 돌아다니는 강대 캠퍼스, 강대 안밖으로의 식당들과 카페 나들이, 난생 처음 보는 유명한 가수들의 축제와 은근 설레는 푸드 트럭, 가을 단풍 화려한 연적지랑 날로 늘어가는 스타일링 능력은 덤이야

 

4) 점점 자립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강대 다닐 때 오히려 TA, 국가근로장학생 일자리, 공모전, 각종 대회, 연구실, 장학제도 등등을 통해 은근 많이 벌 수 있어

     

5) 번아웃증후군과 우울증, 공황장애를 왜 나도 검색하고 있는 건가 하는 날들, 그 때 강원대에 심리센터에서 무료로 상담 지원해주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가면서 꽤 장기적으로 관리해주는데 그거 정말 든든하고 힐링 되니까 놓치지 마!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아보는 몇몇은 별로인데 웬걸 몇몇은 꽤 감동적일 만큼 치유가 되는 날들 있잖아 이거는 후자였어!

     

이십대의 서핑을 타며

혼란스러운 기분 정말 별로겠지만

명확해지는 때도 올 거야

다시 흐릿해지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때도 올 거고

     

그래.. 그리고 그런 것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어느 정도는 느껴져

인생이라는 게 어떻게 생긴 건지

     

스무 살 너보다 더 어른이 된 내가

인생, 그거 별 거 아니다 다 해피엔딩이다!! 라고

나도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하하..!

     

사실 너를 이렇게 편지로나마 찾아온 이유는

어떤 해결책을 주려는 건 아니야

그저 괴로웠을 너의 어깨를 매만져주고 싶었어

     

그렇게 버텨주고 힘내주고 있어서 고맙다고

그리고 그때는 절대 못했을 오그라드는 말, 사랑해라고.

     

강원대라는 숲으로

잘못 빠졌다고 생각했던 스무살이었는데

거기 있었을 때가

인생에서 참 뜨겁고 따스하고 맑고 시원해서

     

가끔씩 찾아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더라

     

과거의 타임라인 그 숲에서

외려 미래의 내가 기운을 받아오기도 해

     

그러니, 더 즐겨줘

그 곳에서 맘껏 너로 살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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