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을 좋아하는 너에게,
- dearmyfreshmanself
- 9월 17일
- 2분 분량

너는 자주 어른의 기준이 무엇인지 묻고는 했어. 무엇을 갖추어야 어른일까, 어떤 단계에 다다라야 나를 어른으로 부를 수 있을까. 남들보다 깊이 사고하려는 너는, 그 생각이 강박으로 다가왔고, 항상 어른스러워하고 싶어 애를 썼지. 가끔은 지쳐가는 거 같아. 온전해지려고 하는 그 강박, 점점 너를 지치게 했어. 가장 큰 문제는 너에게서 멀어져간다는 거야. 나는 그저 나일 뿐인데 내가 갖고 싶은 모습들을 계속 추가하려고 하고, 그렇게 표상되려고 하니 어떨 때는 진짜 나의 모습이 무엇인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가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나를 마주하려고 했어.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적어 내려갔어. 진솔하게, 어느 것 하나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의 고찰들, 감정들, 행동들을 적어 내려갔어.
사람은 일기장에도 거짓말을 쓴다잖아? 처음 적을 때는 조금씩 꾸미게 되더라고. 적나라한 나의 생각들이 너무도 아이 같고, 유치하고, 때로는 받아들이기에 버거워서 우회하여 말하게 되더라고. 그러다 알게 됐지. 이렇게 쓰면 진짜 ‘나’를 마주할 수 없겠구나. 감정의 가시를 잘라내는 걸 멈췄어. 합리화하는 걸 멈췄어. 평소에 회피하고, 잘 마주하지 않던 감정들을 손에 담아 들여다보았어. 불안, 공허, 시기, 이기심 같은 어른이 되고 싶은 내가 용인하지 않던 감정들을 봐주었어. 그리고 하나하나 세세히, 아니면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적어 내려갔어. 처음에는 낯설고 혼란스러웠지만 점점 나의 부정적인 부분들을 인정해 가는 내 마음을 보며 안정되더라고.
나는 꽤 감정적인 사람이더라. 감정이 나의 하루를 좌우하더라고. 내가 기분이 정말 좋던 날은 모두 좋은 감정을 느껴서였어. 나는 내가 기능적으로 살기 좋아하고, 이성적으로만 사고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또 나는 나의 많은 감정을 회피하며 살아왔더라. 어쩌고 보면 감정이라는 걸 나쁜 것으로 생각해 왔던 것 같아. 감정에 치우치지 않으려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당장의 상황만 해결하고 그 안에서 느꼈던 나의 감정들은 돌보지 않았어. 근데 이것도 내가 감정적인 사람이라 그런 것 같아. 너무 감정에 잘 치우치니까. 깊이 휩쓸리지 않으려고.
외적인 건 단기적으로 알기 쉽게 발전할 수 있어. 공부하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하고. 하지만 사람이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내면부터 단단해져야 하는 거 같아. 그러기 위해 나는 나의 문제들을 바라보고, 내가 숨기려 하는 것들을 파헤치고, 돌봐줄 거야. 나를 열심히 돌볼 거야. 나를 그 자체로 바라봐 줄 거야. 그러다 보면 내가 어른스럽지만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겠지. 근데 뭐 어때? 난 이제야 나를 펼쳐내기 시작했어. 처음 펼치는 이가 능숙하다는 게 더 이상하잖아? 유치해도 되지. 단순해도 되지. 감정에 휩쓸려도 되지. 그게 나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난 언제나 깨달으려 하고, 나를 바라보는 매 순간 나의 세계는 더 넓어질 거야. 무너지는 과정에서도 무언가를 깨달을 거야. 그리고 다시 일어날 거야. 나는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나는 참 많이 성장했어. 행동과 감정 일기를 쓰는 게 정말 나에게 도움 될 수 있을까 하는 모호한 의지에서 시작했지만 언젠가 보니 평온해져 있더라고. 역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건 늘 큰 도움과 의미를 주는 거 같아. 생산적이고 성숙하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도 줄었어. 공허함을 당연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나를 이해하는 세계가 넓어지니까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도 넓어지더라. 나와 하는 대화가 깊이 있고, 재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관계 속에서 뿌듯함을 느끼는 게 요즘 나의 행복이야. 지금 너의 행복은 무엇이니? 또 무얼 깨달았니? 무슨 고민을 주로 하고 있니? 난 항상 나에게 닥쳐올 미래의 일들을 기대하며 살아. 그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난 다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 널 믿어. 풍부하게 살고 싶은 너의 마음을 믿어. 늘 응원하고 있을게, 너도 많이 추억해 줘. 나를 많이 아껴주어서 고마워.
P.S 먼 훗날 네가 일군 도약이 마음에서 희미해질 때, 이 편지를 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