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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길을 밟고 올지 나는 참 궁금하니까.



또 다른 우주에게

안녕. 진부한 인사말로 시작하는 글이 후회를 위하지 않길 바라. 과거는 흘러가지 않으니 너를 또 다른 우주에 있다고 생각하며 말을 써 내려갈게. 여기에 잔존하는 나는 놀랍게도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었어. 아마도 너는 이것들을 너의 ‘전부’라고 생각할테지.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하지만 분명 끝까지 읽어보면 후회하지 않을거야.

음, 너는 어디쯤에 있을까. 합격 발표가 났을 땐 아무런 감흥이 없었지만, 가장 친했던 동창도 같이 합격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쯤일까. 들뜬 마음으로 처음 학교에 와서 넓은 길을 헤매던 날은 여전히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 지금의 나는 그 친구와 멀어져 버렸지만. 매일 한탄하며 술을 마시고 있니? 지금의 나는 술을 자주 마시진 않아. 주량이 이름마냥 불리던 명성 때문일까 주량은 여전하지만 말이야. 대학 생활의 전부, 아니 어쩌면 미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연인은 지금 내 옆에 없어. 믿기지 않겠지. 그렇게 너를 괴롭히던 아버지도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아.

다시 돌이켜봐도 당시의 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상실되었네. 비워진 마음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더라. 인생의 모토가 ‘후회하고 살지 말자’라는 사람치고는 참 남루한 결과라고 생각해. 아마 이런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보게 되었으니 삶이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거야. 실제로 나도 그랬었고.


그런데도 네가 걱정하던 단 하나는 확실하게 말해 줄 수 있어.

나는 여기 살아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예정이야. 의미를 아득바득 찾아서라도 세상에 눌어붙어 있으려고 해. 거창한 이유는 없지만 비움 끝에 남은 게 ‘나’ 하나 밖에 없었다는 거로 설명이 될까? 끝없이 고민해도 정의되지 않는 나 자신이 궁금해졌어. 분명히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삶에 대해 고찰하는 건 너의 기나긴 습관이잖니.

아마 내 글을 읽게 되더라도 너는 끊임 없이 고민하고 탐구할 걸 알아. 내가 뒤늦은 복수전공을 시작하면서 교수님들께 면담을 진행했던 것과 같이 말이야. 모두 그렇겠지만 교수님들도 각자의 삶에서 깨달은 바가 다르니 우리의 물음에 대한 대답도 달랐지.

A교수님은 안타까운 생활에 대해서 위로를 건네기도 했고 방도를 알아봐주시기도 했어. 그리고 유년시절의 힘든 이야기를 같이 이야기해주시면서 힘이 되어주시려고도 했었지. B교수님은 나의 심리적 힘듦이 학업에 지장을 주면 안된다고 질타하기도 하셨어. 삶의 방향성이 우선이 아니라 과정이 결과를 만드는 일이라고. C교수님은 이런 이야기 자체를 부담스러워하셨지. 스승과 제자를 비롯한 어떠한 관계에서도 적당한 거리감은 필요하다고 말이야.

정답은 없었어. 인생에 정답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없었다기엔 다 유의미한 말이었다고 생각해. 지금은 모든 말들이 정답같아. 그리고 학생의 뚜렷하지 못한 고민에 대답해주셨던 모든 목소리들이 참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어. 왜냐 하면 ‘잘모르겠다’라는 말을 단 한명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야.

답이 너무 많으면 확실한 게 무엇 하나 없어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어. 내가 지금 살아가려 하는 인생이 그렇지. 특히나 문제는 늘 발생했다가 사라지고를 반복해. 긴 악연처럼 이어지는 문제에서 해방하게 되면 너도 내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자유에서 도달하게 되는 내일은 너무나도 자유분방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고 무엇에도 답을 내릴 수가 없거든. 그냥 망망대해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게 돼.

그래서 감탄했던 거야. 아주 먼 시간의 차이를 딛고 생에 대해서 물음을 구하는 스쳐 가는 한 명의 학생에게 망망대해에서 얻은 자신만의 방향성을 말씀해주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점점 더 실감해.

그러니 물음에 집착하지 말고 답에 얽매이지 말고 시간에 지치지도 말고 천천히 유영하며 그 순간의 답에 집중하면 좋겠다. 아마 우리는 평생토록 답을 찾지 못하고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니. 그때에는 이랬었고 지금에는 이렇더라는 문장들을 모으고 모아서 그냥 너와 나의 ‘삶’이 되어있었으면 해.

아쉽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비록 강원대에서 만난 인연과 학문에서 어떠한 것도 가져오지 못했어. 남기지 못했다는 게 더 정확하겠지. 하지만 내 청춘의 일부를 그곳에 두고 왔노라 장담할 수 있지. 그러므로 행복하게 추억할 수 있지. 그리고 후회마저도 전부 묻어두고 타인과 똑같은 삶의 굴레에 발을 들여놓았어.

예상대로 지루하고 낡고 머리 아프더라. 그렇지만 살아가는 게 그래. 삶을 살아내는 데에 익숙하지 않겠지만 대학에선 충분히 놀아도 실패해도 괜찮으니 한 번 살아가 봐.

뻔한 결말이지만 어떤 우주에서도 네가 살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 단 한 번의 죽음도 겪지 않았길 바라면서.

너를 둘러싼 모든 문제는 머지않아 해결될 거야. 그러니 부디 낮은 고통에서 떨어지지 않길 바라며 진흙 길을 여러 갈래로 빚을게.

네가 어떤 길을 밟고 올지 나는 참 궁금하니까.

- 다른 우주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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