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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지금’ 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온전히 느끼길 바라

20살의 나에게


안녕?

먼저 너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게 도와주신 ‘서강대학교 희망연구소’ 담당자분들께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어.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만, 직접적으로 마주할 일은 잘 없으니까 이 편지를 쓰는 지금이 참 소중하다. 우리는 계속 과거에 얽매여 그늘 안에 숨어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꿈을 지키며 내일의 나를 빛으로 가득 채우기 위해 노력하잖니. 나는 이제 과거와 미래보다 ‘지금’을 보기 시작했어. 반가운 소식이지?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고 편협한 생각이었지. 용기가 없어서 꿈을 포기해 놓고 경제적인 이유를 들먹이면서 ‘불우한 가정으로 인해 미래가 안정적인 학과에 입학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으니. 욕심도, 꿈도 많던 우리에겐 책임감이 부족했던 걸 이젠 알게 됐어. 안 그래도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 “거기 가서 뭐하게?”라는 말까지 들으니까 비참하고 수치스러워서 처참히 무너지던 그때가 지금도 안쓰러워. 그때 너를 믿어주지 못해서, 일으켜 세워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그럼에도 조금씩 고개를 들어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찾으려고 애써줘서 고마워.


그리고 타인에게 신경 쓰느라 너에게 소홀히 했던 것도 사과할게. 그때쯤 엄마가 그 사람의 불륜에 대해 말해줘서 과거에 엄마에게 했던 폭언과 폭행이 생각나고 오랜 백수 생활로 세 아이 혼자 일해서 키우신 우리 엄마가 안타까우면서 엄마가 내 전부가 됐던 거 같아. 어쩌면 초등학생 때부터 ‘내가 죽더라도 우리 엄마를 위해서 보험금이라도 남기고 죽어야지’라

고 생각했을 정도로 엄마에 대한 연민이 있었나 봐. 지금 생각해 보면 너도 엄마에게 얘기를 전해 듣고 힘들었을 것 같더라. 너도 폭언과 폭행의 피해자였고 학원 안 다니고 성적 올리려고 아등바등 정말 힘들어했잖아. 잊고 싶었던 과거가 내가 가장 나약했던 순간에 덮쳐버려서 그 어두운 그늘에 널 혼자 둬서 미안했어.


코로나로 인해 1학년 2학기에서야 학과 선배를 만나러 처음으로 학교에 갔던 때가 선명해.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나 혼자 전철을 타고 가는 길이 어색하면서도 마냥 우울하진 않았어. 생각보다 학교는 매우 컸고 선배는 이곳저곳 날 데리고 다니면서 처음 학교에 온 날 위해 많은 시간을 내줬어. 그 선배는 전철에서 봤던 코스모스처럼 은은하면서 하얗고 밝았어. 선

배를 만나서 강의도 열심히 듣고 학과 활동도 참여하면서 내 그늘에 빛이 들기 시작했어. 20살의 나에게 가장 칭찬하고 싶은 일 중 하나는 이 선배를 만날 기회를 놓치지 않은 거야! 2학기 때 ‘여행과 문화’ 수업을 네가 들을 텐데, 미리 말하자면 이 교양이 너에게 많은 힘이 될 거야. 항상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던 우리를 조금씩 ‘지금’으로 이끌어 주신 교수님께도 다시 한번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나’를 돌아보는 수업에서 어느 순간 내 이야기에 내가 없다는 걸 느끼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수업 당시에는 어렴풋이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책과 경험 등을 통해 깊숙이 새겨지고 있어. 네가 ‘지금’ 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온전히 느끼길 바라.


너의 수많은 작은 용기 덕분에 지금의 나는 꽤 좋은 성적에, 만족할 만한 대학 생활에,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과, 완전한 내 편인 진정한 가족과, 나를 더욱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연인과,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나 자신 사이에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고 있어. 나는 여전히 네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둡고 욕심이 많고 약간은 우울하지만, 밝은 척을 잘하는

나야. 여전히 나를 안쓰러워할 때도, 타인을 돌보다 나를 돌보지 못할 때도, 엄마를 연민할 때도 있어. 그렇지만 그 순간도 결국 과거로 흘러가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우리에겐 그늘에 멈춰 있는 시간보다 감사함을 베풀고 상대를 배려하고 나를 위해 애쓰는 시간이 훨씬 많잖아. 너는 지금 있는 그대로, 너를 더 사랑하면서 나를 따라오면 돼.


이 편지 덕분에 너에게 미안했던 마음을 한시름 내려놓은 것 같아. 너도 이제 과거의 너를 용서해 주고 미래는 나에게 맡겨 놓고 지금 네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길 바라.


사랑하는 20살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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