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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별을 발견해, 그 인도를 따라가고 있길 바라요

  • dearmyfreshmanself
  • 9월 17일
  • 2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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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좋은 봄이네요. 저는 정확히 1년 전의 당신입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아침에는 6도, 낮에는 23도까지 올라가는 끔찍한 일교차에 당했어요. 그래서 감기에 시달리고 있네요.


편지를 받는 당신은 좀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당신이기도 한 제가 왜 말을 높이느냐고 말이죠. 이건 저의 믿음입니다. 지금의 저보다, 이 편지를 받을 당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으리라는 믿음이요. 그렇다면 당신은 저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테죠. 게다가, 당신은 저보다 1살 많기도 할 테니, 제가 말을 높이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겠네요. 그렇죠?

조금 과거부터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코로나의 여파가 막바지에 있던 22년이었죠. 처음 경험한 대학교는 정말 쉽지 않았어요. 학업적인 내용을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전 1년 내내, 수업이 있으면 수업을 나가고,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로 돌아와 컴퓨터나 휴대전화나 만지작거리는 생활. 그건 정말 “대학교답지 않은” 생활이었어요. 학업의 장이라는 측면에선 성공적이었겠지만, 인생 체험의 발판이라는 점에서는 한없이 낙제점인 생활이죠.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죠. 군대는 대학교보다 더 어려웠어요. 게다가 집안 사정까지 겹치면서, 심적으로 크게 고통받은 18개월이었죠. 그런 와중에 놀라웠던 것은, 제가 그 모든 불행 속에서 그토록 무감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제 안의 무언가가 깎여나가고 있는 것 같았어요. 모든 상황과 불행 속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감각이었죠. 그건 달갑지 않은 감정이었어요.

그렇게 군대를 마치고 2학년이 되었네요.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은 중간고사가 막 끝난 시점이에요. 당신도 그렇겠죠? 냉정히 자기평가를 해보면, 그야말로 엉망이었어요. 세상에, 시험지를 받고 40% 정도를 겨우 풀었는데, 그 뒤론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그때부턴 문제를 최대한 읽고,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를 짜깁기해서 어떻게든 그럴듯하게 쓰는 게 최선이었어요. 그건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어요.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운동을 하러 나갔어요. 군대에서의 기억을 되살려 3km를 뛰었죠. 군대에선 13분 30초 정도에 마쳤던 것 같은데, 1km를 뛰니까 더는 못 달리겠더라고요. 그때 느꼈어요. 아, 나란 사람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다시 2학년으로 복학을 한 3년 동안, 나아가기는커녕 뒤로 자빠져 있었구나. 고통스러운 깨달음이었고, 사실 알고 있었지만 애써 밀어두고 있던 진실이었어요. 그것 또한 진화하지 못하고 퇴화했다는 증거겠죠. 문제점과 해결 방법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나아지지 못하는 것이니까요. 자학이 좋지 않음을 알면서도 저는 자학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 감정이 윤동주의 부끄러움을 손톱만큼이라도 닮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서 편지를 쓰면서 미래를 상상해보았어요. 저는 당신이 조금은 나아졌을 거라고 믿고 싶어요.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이 편지를 받자마자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게 되겠죠. 그런 반응도 이 편지를 쓰는 동기에요. 당신은 어떤가요? 2학년에 MT 가서 겨우 사귄 후배 한 명은 군대에 간다고 했으니, 별 노력 없이는 또 혼자가 되고 말았겠네요. 조금은 노력했나요?

지금 저는 방황하고 있어요. 진로의 의미로도, 자존감의 의미로도. 그러나 1년은 짧으면서도 길고, 누군가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하기도, 그렇지도 않은 시간이죠. 이 편지는 다짐이자 소망이고, 자학을 멈추고 자기반성으로 넘어가고자 하는 발판이기도 해요. 방황은 삶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끝나지 않겠지만, 적어도 당신이 바로 다음의 목적지 정도는 발견했길 바라요. 반짝이는 별을 발견해, 그 인도를 따라가고 있길 바라요. 부디 이 편지를 받는 당신의 앞에 행운이 있기를. 그리고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저에게도 행운이 있기를. 그래서, 당신의 지난 1년이 제법 있다고 회상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요.

     

2025년 4월 30일

당신을 걱정하는 1년 전의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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