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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좋은 경험이 남더라



아기 곰두리야 안녕?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내고 나니 벌써 2학년이 되었네. 친구들한테는 자주 편지 써줬었는데, 너한테는 한 번도 써준 적 없지? 너를 제일 많이 신경 써줬어야 하는데 그동안 소홀했던 것 같아서 아차 싶다. 오늘의 편지가 힘들어했던 너의 새내기 시절을 달래줄 수 있길 바랄게. 편지가 조금 일찍 도착했다면 울다 잠드는 날이 하루라도 줄어들었을 텐데. 조금 아쉽다. 조금 민망한 얘기지만, 베개 빨래할 때 보니까 얼마나 울었는지 얼룩덜룩하더라.


기숙사 입사하던 첫날 기억나? 그날 처음으로 가족들 보고 싶어서 울었잖아. 일요일 저녁 기숙사로 다시 돌아가는 버스에서도 가기 싫어서 많이 울었지. 아무리 맛있는 밥을 먹어도 허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어. 학기 초반에는 꿀단지 숨겨놓은 것 마냥 틈만 나면 집에 오곤 했었어. 정이 많은 너였지만 유독 학교에는 쉽게 정을 붙일 수가 없었지. 꿈인지 미련인지 모르는 그걸 붙잡고 있느라 20대 초반을 오롯이 수능에 바친 너라서, 처음 여기에 올 때 많은 걸 포기해야 했었어. 부모님의 기대를 포기해야 했고, 오랜 꿈을 포기해야 했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훨씬 넓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야. 그때는 대학이 내 인생을 결정지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미 대학에 오기 전에 많은 실패를 겪었던 나라서 더 이상의 실패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친구들은 이미 졸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충분히 늦었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모든 걸 다 잘하려고 했지.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시간은 도서관과 독서실에서 보냈고, 주말에는 연애를 했고, 남는 시간에는 동아리나 대외활동을 살뜰하게 챙겼어. 과 생활이나 공모전도 열심히 참여했어. 방학에도 스터디 카페나 관리형 독서실을 끊어서 영어 공부를 했고, 주 5일 알바를 했어. 하루하루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 손에 쥐어지는 것들이 많아졌어. 그런데 어느 날은 너무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 몸이 부서질 것 같았어.

그제서야 주변을 둘러봤어.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졌던 강의실, 비즈니스 관계로만 느껴졌던 학교 사람들, 애정 없이 달달 외웠던 전공책들을 전부 다시 봤어. 하나하나 꼼꼼하게 뜯어봤어.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있더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한 가지씩은 숨어 있었어. 사실 강의실 외관은 따뜻한 색의 벽돌이었고, 내가 우울할 때마다 옆에 있어 주는 동기들이 있었고, “이게 대학 공부구나.” 하고 감탄할 만한 훌륭한 교수님들이 계셨던 거야.


그제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 공강 시간에 동기들이랑 마라탕 먹으러 가는 게 좋았고, 축제 공연을 보면서 맥주 짠 하는 게 좋았고, 다 같이 독서실에서 밤 새는 게 좋았어. 그때부터 울면서 잠드는 날이 줄어들었던 것 같아. 힘들었던 시간을 보낸 대신 소중한 경험들도 얻었어. 아기 곰두리도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면서 대학 생활 즐겁게 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안될 것 같아서 포기했던 수많은 일들 기억나? 도전이라도 해볼걸 하고 후회하면서 잠 못 드는 날이 참 많았었지. 올해는 눈 딱 감고 도전이라도 해봐. 작년의 나는 학교에서 한두 명 뽑는다는 외부 장학생에 지원할지 말지 정말 많이 고민했었어. 지원자 대부분이 SKY 학생들이라는 후기를 읽고 지레 겁먹었었거든.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의심하고 또 의심하면서 마감 전날까지 모집 요강만 붙들고 있었어.


그러다 마감 당일부터 자소서를 준비하기 시작했어. 글을 쓰면서도 수백 번씩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왔지. 비록 마감 5분 전에 제출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했어. 이전처럼 후회하느라 잠 못 드는 일도 없었어. 거짓말처럼 1차 합격 메일을 받았고, 2차 면접만큼은 똑 부러지게 준비해서 합격할 수 있었어. 이후에 있었던 많은 기회들도 일단 도전해봤어. 그리고 좋은 결과를 많이 얻었지. 이걸 알고 나니까 놓친 기회들이 너무 아쉽더라. “나는 안될 거야.” 하고 포기했다면 내가 이만큼 발전할 수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일단 해봐.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 남더라.

아기 곰두리! 입학을 정말 축하해.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시간들을 충분히 즐겼으면 좋겠어. 많이 웃고, 많이 행복해하면서 후회 없는 하루들을 보내길 바랄게.


언제나 너를 응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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