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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언제든지 나에게 오렴



사랑하는 연이에게


안녕 연아! 어제 또 술을 진탕 먹고 간신히 집에 들어왔지?


핸드폰도, 지갑도 다 두고 와서 다음날 친구들이랑 같이 술집 가서 찾아왔잖아.

한 번만 더 술 먹으면 후야(반려견 이름) 언니가 아니라 후야 친구라고 그렇게 다짐했는데도 결국 강아지 친구가 되었구나. 매번 잃어버리는 지갑도, 핸드폰도 항상 뒤죽박죽인 너의 가방도 참 어지러운 새 학기다 그치?


하지만 지금 이 20살의 따듯한 5월을 즐겨둬. 25살이 되면 넌 술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게 될 거야. 그리고 너만 찾는 후야를 자주 안아주고 산책시켜줘 후야는 몇 년 후에 자기 집에서 조용히 무지개다리를 건네게 될 테니.

그리고 20살의 연아, 아무리 힘들어도 눈물은 아껴둬. 너는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에 세상에 전부라고 믿었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될 거야. 처음 사귀어보는 남자친구, 첫 캠퍼스 연인의 주인공들이었던 너희는 결국 좋은 결실을 보지 못했어. 너는 엄청나게 울 거야. 특히, 연적지 앞 나무 의자에 앉아 대운동장이 떠나가라 울게 될 거야. 하지만 괜찮아 너는 그 덕에 2학기부터는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될 거고, 거기서 2년간 더 머물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거니까. 내가 너보다 딱 8년 더 살아보니까 인생 항상 최악은 아니더라고.


23살의 연아, 학교에 돌아와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할 거야. 스터디도 들고,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너도 몰랐던 너 자신을 찾게 될 거야. 네가 생각보다 춤에 재능이 있더라. 너의 춤은 단톡방을 타고 유튜브에 올라가서 한 달 동안은 조금 시끄러울 거야. 하지만 전혀 걱정하지마, 그때는 괜히 부끄러워서 학식도 못 먹겠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너에게 관심이 없어.


24살의 연아, 너는 이때부터 많이 방황하게 될 거야. 유학을 다녀오고, 자격증을 준비하며 너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걱정하는 중이야. 첫 연애에 실패해 연적지에서 엉엉 울던 것보다 더 힘들어할 거야. 보이지 않는 긴 터널, 그 터널에서 혼자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가는 것 같은 기분이겠지. 어깨 위에 걸린 가방끈은 점점 너를 짓누르고, 터널은 점점 캄캄해져서 칠흑 같은 어둠이 너의 발목을 잡겠지만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내가 너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잘하고 있어. 다만, 감정조절이 안될 때가 많고. 좀 더 치밀하게 하루 계획을 세우면 좋았을 텐데 그 점이 가장 아쉬워.


25살의 연아, 너는 이때부터 사회생활을 하면서 학교가 얼마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곳이었던지를 그제야 깨닫게 된다. 사회는 정말 차갑고 삭막한 곳이야. 이건 안타깝지만, 오늘날의 사회도 차갑고 무서워 여전히. 하지만 28살의 너는 좀 더 좋은 곳에서 일을 시작하니 걱정하지마, 그리고 프린터기 작동 못 한다고 종일 너를 갈구던 팀장은 결국 퇴사하니, 그 사람을 너무 미워하지는 마. 일기장은 온전히 너의 하루로만 가득하길. 결국, 2020년도의 일기장은 그 사람 내용으로 보관하지 못하고 버리게 되잖아.

그리고 다시 너는 새로운 꿈을 꾸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해. 그리워하던 강원대학교야. 비록 코로나로 개강도 늦어지고 온라인 수업이 전부지만, 너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거야. 어렵고 온통 처음 보는 내용이지만 밤을 새워가며 노력하는 너의 모습에 내가 아직도 눈물이 난다.


20살의 연아, 21살의 연아, 그리고 28살 오늘의 연아. 단 한 번이라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단다. 내가 비록 표현이 서툴고, 세심하지 못한 성격이라 너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 너가 힘들어할 때 한 번 더 안아줄걸, 실수해서 자책하는 너를 왜 그리 모질게 대했을까? 온갖 걱정으로 잠 못 이룰 때 대담하게 ‘걱정하지마!’라고 말해줄걸.


사실 나는 너가 성공을 했는지, 꿈을 이뤘는지까지는 몰라. 그건 50살의 연이에게 내일 물어볼게. 한 가지 확실한 건 너는 행복할 거야. 왜냐하면, 28살의 연이는 신입생의 연이보다 많이 성장했거든. 이제 너는 많이 대담해졌거든, 외국어도 많이 늘어서 해외여행도 자주 가고, 출장도 잦아. 그리고 이전보다 훨씬 긍정적인 사람이라 걱정도 많이 하지 않아.


연아, 힘들면 언제든지 나에게 오렴. 그냥 쉬고 싶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속상할 때 이젠 내가 너를 온전하게 안아줄 수 있어. 사랑한다. 나의 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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