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나였던 너에게
안녕, 먼저 축하의 인사를 건넬게.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들었던 과정을 용케 버텨내고 대학생이 되기까지 정말 고생 많았어. 이제야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된 것 같지.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낭떠러지에 서있는 기분이었어. 고려대학교 인재발굴처에 들어가 말 그대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합격자 조회하기를 누른 순간이었어. 고려대학교 과학인재장학생이라는 믿기지 않는 글자를 보고 나조차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모든 감정을 쏟아낼 듯이 오열하던 내가, 아니 네 모습이 생생해.
재수 끝에 누리는 대학 생활은 달콤한 꿈 같을 거야. 시간이 흘러 2023년을 살고 있는 나도 가끔씩 이 삶이 꿈 같을 때가 있으니, 갓 입학한 너는 얼마나 더 그럴까 싶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상상이 현실로 펼쳐진다는 사실은 너무 신기한 것 같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 내가 이렇게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너에게 찾아온 이유가 있어. 시간이 조금 흘러 새내기 시절의 너를 떠올렸을 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전해보려 해. 과거와 현재의 내가 완벽히 같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존재이기에 내 말을 잘 이해할 거라 믿어.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입학한 까닭에 학교 건물의 강의실보다는 노트북 속 비대면 플랫폼이 더 익숙할 거야. 고대에서는 함께 '밥'을 먹는 '약'속을 줄여서 '밥약'이라고 부르지. 나도 다양한 사람들과 밥약을 하며 조금씩 알아갔던 것 같아. 처음이어서 그런지 내게는 첫 번째 밥약이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어. 크림슨색 휘장이 걸린 중앙광장은 공책 표지에서만 봤었지? 4월 1일 만우절에 바로 그 중앙광장에서 동기들과 짜장면을 먹는 문화, '중짜'도 재밌게 즐기길 바라. 연세대학교 친구와 과잠을 바꿔 입었던 그날은 색다른 경험으로 남아있어.
16살 때부터 래퍼 비와이를 좋아한 너에게 살짝 귀띔하자면 대동제 라인업을 기대해도 좋아. 특히 5월의 피날레 입실렌티는 세상 모든 걱정을 다 내려놓은 듯 한 톨의 후회도 없이 즐기는 날이 될 거야. 점심도 저녁도 못 먹었지만 얼마나 행복하던지! 재수하다가 너무 힘들면 민족의 아리아를 틀어놓고 조용히 따라 불렀던 거 생각나? 당시엔 홀로 울고 있었는데, 입실렌티와 고연전 날은 모두가 빨간색 옷을 입고 청춘을 불태우며 응원했지. 드라마나 영화에 보면 인물은 그대로인데 배경이 확 바뀌는 반전 효과 있잖아. 두 장면을 비교해보면 꼭 그 효과 같아. 그만큼 고대는 내 인생의 반전을 가져다준 곳이야.
수험생 시절 "연고전 가자!"라고 썼던 과거의 메모를 보면서 이제는 고대생 신분으로 "아니지, 고연전이지~" 하며 웃으며 정정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해. 빨간 옷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틀 동안 경기장을 가득 메워 응원하고 함께 어울린 기억, 뒤풀이까지 참석하며 동기들과 밤샌 후 첫차를 타고 들어간 기억. 지나고 보니 모든 게 낭만이라는 두 글자로 남더라.
연애에 큰 뜻 없다고 생각했던 너에게도, 가을이 되면 누군가 찾아올지도 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어느새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 잡을지도 모르지. 지금은 결말을 다 알게 되었지만, 아직 그 상황 안에 있을 너에게는 딱 한 마디만 할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 순간 딱 드는 마음에 충실하자. 그렇지 못했기에 현재의 나는 많은 후회가 남아.
얼마 전 파일을 정리하다가 재수하면서 틈틈이 썼던 위시리스트를 발견했고 그 중 몇 가지를 가져왔어. '여행, 과외 아르바이트, 탈색, 퍼스널컬러 검사' 등이 있더라. 너무나 바라던 것들이었지? 위 목록의 비밀을 말해주면, 새내기 때의 네가 모두 해본 것들이라는 거야. 학기 중과 방학 중에 마음 맞는 대학 동기들과 여행을 다녀온 추억은, 1학년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마음 한켠의 행복한 필름이 되었어. 대학에 와서 그 친구들을 만난 것은 진심으로 큰 행운이야. 내가 너보다 조금 더 살면서 경험해본 바에 의하면 고대의 수많은 장점 중 최고의 장점은 주변 사람들이 다 고대생이라는 사실이야. 모든 인간관계를 챙기며 유지하려는 마음도 좋지만, 냉정히 말하면 욕심일 수도 있겠더라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잘해주는 현명함을 지니면 좋을 것 같아.
지금까지 현재의 내가 전하는 편지를 읽어보았는데 어땠을지 궁금해. 너에게 어떤 말을 건넬까 고민하며 오랜만에 너를 찬찬히 돌보았어. 나름 알차게 살면서도, 미래가 두려웠던 듯해. 하지만 현재의 나도 마찬가지야. 여전히 미성숙하고 불완전하지. 그러니 걱정할 시간에 과감히 실천해보자! 이 글귀는 시간을 뚫고 과거, 현재, 아마도 미래의 나에게까지 적용되지 않을까 싶어.
마지막으로 꼭 일러주고 싶은 게 있어. 대학은 결코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인생의 종착역도 아니라는 점이야. 고려대학교는 분명 노력에 대한 결실이지만, '20살 때까지의' 노력만 반영된 결과라는 점을 꼭 기억하길 바라. 고대라는 최고의 환경이 주어진 만큼 그 속에서 늘 겸손하게 배우며 더욱 발전하는 삶을 살기를 응원할게.
2023년 2월, 너를 지나온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