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삶은 때로 나를 배신한다.
고등학교 1학년의 어느 겨울, 고연전 영상을 우연히 봤다. 붉은 물결 속에 끼고 싶었다. 저 무리 중 하나가 되고 싶었다. 처음으로 생각만으로 가슴 뛰는 목표라는 게 생긴 순간이었다.
새내기의 추억은 저마다 제각각 빛난다. 즉흥적으로 교실을 뛰쳐나와 놀러가기도 하고, 다음 날이 될 때까지 미친듯이 술에 취해보기도 하고, 풋풋한 설렘을 느껴보기도 하고.
그리고 삶은 날 배신했다.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내가 그렇게 간절하게 경험하고 싶었던 그 모든 것들이 마스크 밑으로 가라앉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래, 난 어느새 선배가 되어 있었다.
새내기에게 해줄 말이 없는 선배.
새내기 때 해본 게 아무것도 없었거든.
그 허탈함과 배신감을 감히 누가 쉽게 말할 수 있는가?
2022년 고연전이 진행되었을 때 기뻐서 슬펐다.
그리고 고려대를 다시 마주할 용기가 생겼다.
어쩌면 처음 마주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려대에서 나는 어떤 가치를 찾게 될까?
지난 2년 동안, 나는 어딘가 고장이 나버린 시계로 살았다.
평생 돌아오지 못할 새내기를 내내 곱씹으면서.
이렇게 미련한 20학번이 나뿐만은 아니었겠지.
찌질하고 부끄러운 이 편지를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대학생활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그 답은 당신에게 달려있다.
꼭 듣고 싶던 명강 하나와 유독 좋아하는 교수님의 강의,
그리고 동기가 추천해준 강의까지 시간표에 담았다.
융합전공도 신청할 거고, 축제도 열심히 즐길거야.
기대했던 대학생활과는 여전히 다르지만, 잘 살고있어.
삶은 때로 날 배신한다.
그래도 우리는 잘 할 수 있을 거다.
꿋꿋이 잘 해낼 거다.
그러니까, 그때 고민하고 좌절하던 네가 잘못한 게 아니라고.
네 새내기는 존재만으로 가치 있었어.
나를 여기 입학시켜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