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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기대하며 살아.


(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노란 민들레에게


그토록 바라던 대학에 입학하며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기대했건만 현실은 캠퍼스를 단 한 발자국도 밟지 못한 채 시작됐다.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은 기숙사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갔고, 생전 처음 시작한 SNS의 화면 너머로 즐거운 듯한 그들을 바라보는 일이란 그다지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비교로 시작한 대학생활이었다.


대학에 와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낀 게 정말 많았다.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많았고 실제로 그 영향을 많이 받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하긴 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책갈피처럼 질투나 부러움 같이 추한 것들도 많이 끼어있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남이 부러우면 우습게도 나-너를 떼어놓지 못하고 나를 한없이 깎아내리게 된다. 그때 나는 나의 별로인 점이 너무나도 촘촘하게 보여서, 도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던 상황에 있었다.


그때 학교 메일을 통해 우연히 접한 교내 집단상담 안내는 나름의 전환점이 됐다. 거기서 알게 된 단순한 사실 하나가 큰 위안이 됐다. 그게 뭐가 됐든, 내 탓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비유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옷을 입었는데 그게 내 몸에 안 맞는 상황인 거다. 그 옷이 나한테 안 맞는 건 내 탓이 아니다. 그냥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성장호르몬이 나온 만큼 자란 거고, 우연히 나랑 안 맞는 옷을 걸쳐봤을 뿐인 거고. 그냥 그럴 뿐인 일인 거야. 약간의 즐거움에도 마음 편히 기뻐하지 못하고 어떤 경우에도 나서지 못하는 내성정을 미워하는 대신, 그런 성향 자체가 잘못인 것도 아니고, 그런 성향을 지니게 된 것도 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는 일이 혼자서는 왜 그토록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집단상담은 그걸 가능하게 해주었다. 집단상담에서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 있다. ‘민들레.’ 뿌리는 단단히 박혀 있지만, 적당히 마음에 드는 바람이 불면 언제든 멀리,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씨앗을 가진 하얀 민들레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나는 그 이름을 빌렸다.


여전히 나는 적극적이지 못하며 낯선 일을 가린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땐 불안한 마음으로 가득하다. 남이 주는 사랑을 때론 의심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을 몰래 미워하기도 한다. 마음 편할 날 없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가엾게 여기지는 말자. 자연스러운 감정이니까 조금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대하면 된다.


그러니 새내기였던 나에게, 새로운 집단에 들어선 노란 민들레에게 전하고 싶어. 너와 다르게 활발하고, 낯선 사람과 쉽게 대화하며, 그 사이에서 쉽게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 거야. 동시에 그러지 못하는 너를 미워할 거고. 삶의 중심에 너를 두자. 그 누구도 너를 바꿀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고, 네가 타인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너를 사랑하고, 곁의 사람을 사랑해. 네가 걸어온 길을 인정하고, 타인이 걸어온 길을 인정하는 거야. 이미 가진 노란 꽃도 예쁘지만, 그게 지고 나면 더 자유로운 나, 진짜 대학생, 어른이 된 내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러니 이미 손에 넣은 것을 잃을까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변해갈 모습을 기대하며,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


2023년의 시작에서,

하얀 민들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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