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부터 너를 사랑해줄게
- 2023년 3월 15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3년 6월 19일

(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그 시절 나의 청춘에게
벌써 5년이 흘렀네. 점점 네가 멀어지고, 낯설어지는 듯해. 지금의 난 너와 많이 다른 모습이야. 너도, 나도, 모두 마음에 들어. 너는 걱정 없고 철없는 순수하고 맑은 아이라서 세상의 모든 사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이 있어. 덕분에 남들보다 훨씬 예쁜 세상을 살아. 같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너는 그 사람들의 좋은 면을 바라볼 줄 알고, 그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기도 해. 그래서 너와 있으면 편하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람들이 많더라.
지금의 나는 좀 달라. 나는 좀 차분해지고, 단단해졌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도 좋지만,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때도 행복하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타인의 영향을 좀 덜 받게 되었어.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고, 가장 가까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이라는 걸 알았어. 다른 말로 성숙해졌다고도 할 수 있겠지. 너는 아마 이런 나의 모습이 상상도 되지 않을 거야. 5년이 뭐 그리 길다고, 어떻게 그렇게 달라지나 싶겠지. 지금부터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 이야기해줄게.
교복을 벗고 맞은 첫봄은 그야말로 봄이었어. 난 새로운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나 정신없이 들떠있었어. 공부보다는 노는 게 더 재밌는 신입생이었지. 그리고 벚꽃이 다 떨어져 갈 때쯤, 꾸밈없는 내 모습이 좋다는 사람이 나타났어. 정말 봄이었어. 새 생명이 꿈틀거리며 피어나고, 하늘은 분홍빛이 돌고, 살랑살랑 뺨에 스치는 바람이 기분 좋은 그걸 봄이 아니면 뭐라고 표현할 수 있겠어. 그렇게 내 온 계절을 봄으로 만들어준 그 사람과, 나는 연인이 되었어. 추울 땐 추워서 좋았고, 더울 땐 더워서 좋았고, 비가 올 땐 비가 와서 좋았고, 모든 날씨가 우리를 위한 날씨였어. 연인이자 제일 친한 친구로, 그렇게 3년을 보냈어.
3년이나 되는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누구보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게 돼. 몰랐던 모습들도 많이 보게 되고. 서로에 대한 마음도 처음과는 많이 달라지게 돼. 그런데 그 속도가 달랐던 거지. 정말 힘들었거든. 좋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 해본 것 같아. 나를 그냥 친구보다도 못한 사람으로 대하고, 모든 걸 내 잘못으로 만들고, 날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고, 너만 놓으면 끝이라는 듯 나한테서 끝을 끄집어내려고 안달인 사람을 잃지 않으려 애썼어. 바보같지? 내가 봐도 그래. 난 그때 정말 많이 아팠거든. 더 이상 내게 궁금한 게 없는 사람에게 체념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내가 당신 몫까지 사랑하면 되지 하며 일방적으로 마음을 주는 것에도 무뎌졌어. 뭐 이런 연애를 했나 싶지? 내 지난 시간을 예쁘게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난 정말 참담하게 무너졌었거든.
이렇게 과거의 나에게 말을 할 수 있다면 꼭 말하고 싶었어. 제발 그 사람 만나지 말라고. 너를 힘들게만 할 거야. 넌 참 많이 아플 거야. 그런데 진짜로 편지를 써보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그 시간을 거쳐서 도착한 지금의 나를 잃고 싶지는 않거든. 난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단단하고 끄떡없는 사람이야. 사랑이 많아서 아끼지 않고 아무리 줘도 샘솟는 사람이야. 많이 아프고 다치겠지만, 그걸 깨닫고 나면 너를 더 힘껏 사랑해줄 수 있을 거야. 너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주기 위해 그 사람을 만나. 나랑 똑같은 실수를 해.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 그 사람은 사랑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 네가 주는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할 거야. 그래도 꾸준히 해봐. 너의 사랑은 끝이 없어. 힘들겠지만, 마음이 아파서 무너져 봐. 가슴을 부여잡고 무너져 보는 거야. 마음이 아프다는 거, 추상적으로 들리지? 너도 그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알게 될 거야. 마음은 허상이 아니라 내 몸속 어딘가에 실재한다는 걸 말이야. 정말 어딘지 모를 부위가 욱신욱신 아프거든. 그걸 극복하고 나면, 점점 내가 보이기 시작할 거야. 내가 뭘 좋아하는 사람인지, 성격은 어떤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할 거야. 그리고 많이 사랑해줘. 많이 아팠으니까.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너무 충분하잖아?
네가 아프지 않고 행복한 시간만을 보내면 좋겠으니 강요는 하지 않을게. 지금 네 옆에 있는 그 사람을 만날지 말지는 너의 선택이야. 그 사람을 만난다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범위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였구나, 하늘을 날았다가 지하를 뚫고 들어갈 수도 있구나 하고 알게 될 거야. 만나지 않는다면, 글쎄, 그 선택은 나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만나는 선택을 할 때만큼 다이나믹하지는 않겠지. 이렇게 설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어차피 너는 나랑 똑같은 선택을 할 텐데. 주변에서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던 나고, 너는 곧 나니까.
그래도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만 마지막으로 알려줄게. 너를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주변에 많을 거야. 혼자 삭히지 말고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도 해봐. 제일 소중한 건 너 자신이야. 잊지 마. 헤어져도 세상은 잘만 돌아가더라. 절대 무너지지 않아. 그래도 혼자 둬서 미안해.
다시 만나면, 나부터 너를 사랑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