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여전히 그날의 봄은 춥니? 대학만을 좇느라고 앞만 달려온 너에게 봄이란... 새벽 공기가 제법 쌀쌀한 날들로 기억되겠지. 그러니 이 편지를 읽고 나서, 네 봄날이 따뜻해지길 바랄게.
우선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생각에 네가 괴로워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너를 고립과 무력감에 빠지게 만들 뿐이야. 가끔씩 주변을 둘러보아도 괜찮아. 새내기여서 누릴 수 있는 기쁨들이 있거든. 새내기 배움터나 MT 같은 거 말이야. 고려대학교에 입학해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과 인연을 쉬이 저버리기에는 아쉽잖아. 네 성격상 낯가림이 심한 거 잘 알고 있어.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겠지. 하지만 나는 아직도 후회돼. 새내기 배움터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볼 걸하고 매번 생각하거든. 혹은 ‘새내기 배움터에 좀 더 남아서 연락처 정도는 물어볼 수 있었는데, 먼저 집에 가겠다고 왜 자리를 빠져나왔을까.’라고 간혹 자탄하곤 해. 너만큼은 후회 없는 후련한 대학 생활을 시작해 보자. 첫걸음을 떼는 게 쉽지 않겠지만, 막상 돌이켜보면 ‘별 거 아니었네.’라고 생각할 거야.
그러니까 이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도록 하자. 너의 20살, 그리고 21살을 재수학원에서 채찍질해가며 공부했는지 그 이유를 기억하니? 대학을 가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잖아. 하지만 1학년을 마치고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니까, 나는 전혀 행복하지 않더라. 매일이 수업, 과제 그리고 공부였어. 주말에도 펜을 잡고 지난 수업 내용들을 복습했지. 쉼 없이 공부하던 습관이 오히려 나를 점점 갉아먹고 있었어. 펜을 놓고 딴 짓을 하면, 마음이 불안해 미칠 것 같더라. 그래서인지 새내기 배움터 이후로 학교 사람들과 만남을 쉽게 가지지 못했어.
하지만 1학년 2학기, 딱 한번 한강에서 동기들을 만난 적이 있었거든. 소수 모임이긴 했는데, 돗자리를 깔고 배달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지. 동기들과 어울리는 동안, 내가 안고 있던 두려움들이 그날 만큼은 느껴지지 않았어. 마치 체증이 가신 듯이 속이 후련하더라. 이처럼 잊지 못할 추억들은 나중에 큰 버팀목이 되곤 해. 추억들을 떠올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야. 이게 바로 마음의 여유 아닐까. 긴장의 연속선상에서 이따금 쉼을 주는 걸 꼭 기억해줘. 하루 정도 공부를 못해도 괜찮아. 대신 그 하루를 의미 있게 살면 돼.
네가 공부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야. 특히 네가 선택한 강의에서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해. 나는 식품학, 의류학, 아동학 그리고 교육학 등 다방면의 수업을 들었어. 적성에 맞은 강의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지. 적성에 맞지 않다고 해서, 그 강의가 너한테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야. 왜냐하면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가르침이 있거든. 따라서 강의마다 ‘무엇을 배워야 되는지’ 목표 설정을 할 필요가 있어. 예를 들어보자면, 나는 1학기에 ‘특수교육학개론’을 수강했는데 원해서 신청한 강의는 아니었어. 학점을 채우려고 우연히 듣게 됐지. 물론 처음에는 열심히 들으려고 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가 떨어지니까 나도 모르게 졸더라. 다른 강의에서는 졸아본 적이 없었거든. 이상하게도 특수교육학개론만 들으면 잠이 오니까, 정말 미치겠는 거야.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지. 그래서 내가 내린 해결책이 바로 특수교육학개론에 의미 부여를 하는 거였어. ‘이 강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또는 ‘이 강의가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어. 그 이후로 강의 내용들이 지루하지 않게 다가오더라고. 만약 이를 깨닫지 못했다면, 나는 특수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아직까지 무지했겠지. 너 역시 나이기에 낯선 내용을 배울 때 시행착오를 겪겠지. 하지만 그 끝에서 너는 유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은 거창한 건 아냐. 음... 22살의 기성아, 정말 고맙다. 두 번째 수능을 마친 11월에 너는 다시 좌절을 맛봐야 했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던 적도 많았을 거야.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토록 바랐던 고려대학교를 왔잖아. 너의 노력을 자랑스러워해도 돼. 그러니 청춘을 낭비했다고 여기지 마. 너는 한 목표를 위해 2년을 노력했던 사람이야. 물론 새내기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네 과거들은 자연스레 기억 저 너머로 묻히겠지. 하지만 그 시간들은 들꽃을 피울 양분이 될 거야. 온갖 고난으로 네가 주저앉게 되더라도, 이 들꽃들을 보며 극복해 냈으면 좋겠어.
이 편지를 바야흐로 마무리할 시간이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고들 하지. 그간 낯 부끄럽다는 이유로 피해왔지만, 3월이 오기 전 네게 감사를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이 말들이 네게 온기로 피어나길 바라.
어때, 여전히 그날의 봄은 춥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