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당당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친절하기를.
- dearmyfreshmanself
- 2024년 8월 13일
- 2분 분량

(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열아홉의 해일에 밀려 스무 살에 도착한 Y에게.
남들과 함께할 때 해사하게 웃지만 매일 허한 마음을 부여잡고 어렵사리 잠을 청하고 있을 너를 알아. 오랫동안 기다려오던 대학 입학이었지만 아이도 어른도 아닌, 보호가 필요하지만 보호를 청할 수 없는 스물이 밉다고 말하며 웃던 네 표정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몇 자 적어보려고 해.
우선, 졸업과 입학을 축하해. 너무 수고 많았어. 이 말이 듣고 싶었을 거야, 그치? 힘겹고 외로웠던 열아홉을 잘 버텨낸 네게, 박수를, 환호를, 따뜻한 격려를, 그리고 눈물이 터져 나올 정도로 뜨거운 포옹을!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어가는 것을 내내 지켜보며 치른 입시는 너를 매 순간 갉아먹기도 했지만, 상실이 파괴하고 간 자리에 새 살이 돋아나며 한 단계 더 네가 강건해졌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너는 종종 네 자신을 남 보듯이 바라본다고 느꼈어. 자신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보는 시선이 차갑다는 것이기도 하지. Y야, 마음 가득 눈물이 차 올라 질식할 거 같은 날에는 편하게 울어도 돼. 그날 따라 너무 무기력하면 좀 쉬어도 돼. 우울하고 외로울 때는 힘들다고 말해도 돼.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 누군가에게 전화 할 때는 자기 혐오감에 휩싸이지 않아도 돼. 아프면 아프다고, 그리우면 그립다고 해도 돼. 네 자신의 아픈 감정들을 받아들이고 보듬는 과정에서 네가 힘들 자격을 따지지 마. 혹시나 네가 자기 연민에 빠질까 봐, 네 슬픔을 이유로 다른 이들에게 폐 끼칠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어. 감정은 평가의 대상이 아닌 수용의 대상이기에, 어떤 감정이든 반드시 생겨난 이유가 있고 스스로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기에, 슬픔이 몰려올 때 또 슬퍼버렸다는 이유로 네 자신을 할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도와 달라고 외치며 네 자신의 슬픈 마음에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줘. 네 안의 어린 아이를 가장 잘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너니까.
전에 읽은 책에서, 인간은 독립적이라는 가정만큼이나 거짓인 게 없대. 모든 인간은 돌봄 속에서 상호 의존적인 존재로 자라나니, 네가 다른 누구도 필요 없는 강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이유로 네 자신을 힐난할 필요는 없어. 외로움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들을 뚫고 나가며 해소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았거든.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네 자신을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문득 엄청난 외로움에 휩싸인 밤에는 전화번호부 뒤적이다 결국 몇 바퀴를 돌고서는 그냥 잠들지 말고, 네가 덜 울기를, 덜 아프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기대. 널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분명, 네가 그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하는 마음에 혼자 모든 것을 감내하는 것보다는 자신들의 시간과 마음을 들여 너에게 힘이 되길 더 원할 거야. 조각조각 힘을 모아 네가 무너지려고 할 때 널 지키려고 할 거야. 반드시 그럴 거야.
사랑하는 Y야, 지금은 웅크리고 있지만 네가 아주 강인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어. 3년 뒤의 너는 널 괴롭게 하던 집을 벗어나 안정적으로 살 곳을 구했어. 스스로를 책임지고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어. 불완전하고 어설프지만 네가 그토록 원하던 1인분에 가까운 모습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 스물 셋의 네게 혼자 먹는 밥은 더 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고, 집밥을 그토록 그리워하던 너는 네 자신에게 한 끼의 요리를 뚝딱 차려줄 수 있게 되었어.
사랑하는 Y야, 살을 에는 듯 슬펐던 가을과 겨울을 건너 무사히 봄, 그리고 초여름에 도착했어! 부재는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 언제든 소중한 이의 부재라는 아픔이 밀려 올 때마다 꽉 채워 널 사랑했던 이가 있었음을 있지 않았으면. 더 이상 꾸역꾸역 살아내는 게 아니라 뚜벅뚜벅 당차게 살아갈 너의 모든 날들을 응원해. 너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엄마가 모든 순간 너와 함께할 거야. 너도 알고 있지? 그러니까, 기죽지 말고 살아. 매 순간 당당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친절하기를.(*)
스물 셋 봄의 끝자락에서, Y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