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안녕하냐고 묻지는 않을게. 그렇지 않다는 걸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밥은 챙겨먹었니?
남들은 캠퍼스 라이프를 꿈꾸면서 고등학교 시절 힘든 입시를 버틴다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게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어. 대학에 가면 미팅을 하고 싶다거나, 엠티를 간다거나, 하는 것들 말야. 근데 그러면서도 내심 대학에 가면 지금까지 있었던 힘든 일은 모두 끝나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거라고 믿었던 것 같아. 아무 근거도 없지만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꾸려나갈 수 있을 줄 알았지. 겪어보니 어때?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지?
꿈을 크게 꿔야 부서지는 조각도 크다는 말 있잖아. 근데 꿈이 너무 크면 떨어질 때 낙차도 크더라고. 이걸 미리 알았다면 좀 덜 아팠을까. 친구를 만드는 건 어찌나 어려운지,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혼자 학교를 방황하던 날들이 떠올라. 어느 날은 걷지도 못할 만큼 배가 너무 아픈데 약은 없고, 그렇다고 도와달라고 연락할 수 있는 친구도 없어서 엘포관 복도 끝 구석에서 혼자 끙끙 앓는데 어찌나 서럽던지. 그렇게 서럽고 외롭고 작아지는 날에는 항상 중앙도서관으로 도망쳤잖아. 지금은 사라졌지만 4층 빨간 패브릭 의자에서 책 읽는 시간만큼은 슬프지 않았던 것 같아.
그렇다고 공부가 쉬웠던 것도 아니었지. 잘해보겠다고 절치부심해봐도 성적은 기대 같지 않았어. 언젠가 한 번은 정말 잘하고 싶어서 과제가 나오자 마자 완성하고 마감일까지 몇 번을 추가로 더 확인하고 제출했는데도 점수가 깎인 거야. 눈만 뜨면 풀 수 있는 정말 쉬운 문제였는데.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기운 내려고 집에 돌아와서 맛있는 음식도 시키고 드라마를 틀었는데 하필 또 슬픈 내용이라 밥도 못 먹고 불도 못 켜고 혼자 몇 시간을 내리 울었던 기억이 나. 왜 내 스무 살은 이렇게나 형편없지, 나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인 거지, 하고 억울해 하면서. 아 다시 생각해도 울컥한다.
영원히 끝이 나지 않는 터널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았어. 고등학교 내내 둘도 없이 친했던 친구들은 서로 싸워서 얼굴을 안 보겠다고 선언하고, 코로나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하고 집에 박혀 있는 데다,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까지 어릴 적부터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주던 어른들이 돌아가시기까지… 원래 어른이 되면 이렇게 사는 건가? 아님 내가 운이 억세게 안 좋은 건가?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도 안 되고 마냥 혼란스러워하면서 그냥 웅크리고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면서 버텼던 것 같다.
스무 살로 돌아가서 너를 한번 꼭 안아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인터스텔라에서 머피의 아빠가 미래의 우주에서 머피에게 신호를 주는 것처럼, 스물 다섯 살인 내가 스무 살인 너에게 신호를 보내주는 상상을 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너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틀려도 실수해도 다 괜찮다고 말야.
이런 마음이 전해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5년 후의 너는 제법 그럴듯한 어른이 되었어. 다정하고 똑똑한 친구들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추억도 많이 만들었고, 어릴 적부터 바라왔던 꿈도 이뤘단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결국 어떤 미련도 후회도 없이 후련한 마음으로 학교를 졸업했어. 영영 학교를 사랑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매일 학교로 돌아가는 상상을 해. 학교 중앙광장의 넓고 푸른 하늘, 매일같이 드나들던 중앙도서관, 전공 수업을 듣던 강의실과,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던 스터디룸…
오늘의 나는 전부 스무 살인 네가 버텨줬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고 고마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사실 지금이라고 완전히 여유롭고 행복하진 않아. 하나의 어려움이 지나가니 또 새로운 고비가 찾아오더라고. 타개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 마음도 몸도 심하게 고생하고 있지만, 힘들어도 씩씩하게 견뎌낸 너를 생각하며 잘 살아볼게.
그러니까 너도, 어릴 적 꿈꾸던 영화 속 주인공 같은 인생이 아니더라도, 눈 앞이 깜깜하고 막막해서 주저 앉고 싶어도, 그래도 너를 포기하지 말아줘. 반드시 행복해지려고 애써줘.
미래에서 무한한 응원과 사랑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