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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길이 이럴 것이라고 단정을 짓지는 말기를 바라

(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무식한 나에게,

     

처음부터 웬 시비지, 라고 느꼈다면 미안해. 하지만 부디 지금 느끼는 궁금증으로 마지막까지 이 편지를 읽어주길 바라. 우선, 그곳의 날씨는 어때? 지금 이곳은 무척이나 따뜻해. 작년 겨울은 유독 길게만 느껴졌는데, 바쁘게 지내다 보니 벌써 여름이 찾아오려 하고 있어. 여전히 많은 문제들을 미처 해결하지 못한 채로 말이야.

          

내가 추측하기로는, 그곳의 너도 마찬가지로 많은 고민들을 짊어지고 있겠지. 그 답을 찾지 못해서, 혹은 문제가 뭔지조차도 잘 알 수 없어서, 어떨 때는 허공에 붕 뜬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기도 하겠지. 어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스무 살이라는 시기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과 막막함에 어딘가에서 웅크리고 있을지도.

          

갓 스무 살이 된 너를 지배한 감정은 '두려움'이었을 거야. 너는 새로운 일에 설렘보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타입이니까. 아는 사람 없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너는, 고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수업을 열심히 듣고, 같이 올라온 동기들과 이리저리 어울려 다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그러면서도 좀처럼 즐거움을 못 느껴서,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것 같지, 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했을지도. (근데 생각해 보면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끌어안고 있었을 거야)

          

너는 그럴 때마다 이곳에 있는 나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지. 나이를 먹은 나는,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느냐고. 조금이라도 영문 모를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냐고. 근데 아쉽게도, 나는 여전히 어른은 못 되었어. 그러나 다행히도, 누구든 쉽게 어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알아.

          

나는 어른이 아니라서 너에게 완벽한 조언을 해주지는 못해. 그리고 조언이란 늘 그렇듯, 스스로 느끼기 전까지는 한낱 와닿지 않는 말에 불과할 테니. 다만 나는, 오래 전의 너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네가 두려워한 것보다 훨씬 괜찮은 일들이, 앞으로 너에게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물론 너는 언젠가, 자신이 해온 것들이 물거품이 되었다며 스스로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해.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가는데 스스로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할 거야. 그때가 되면 너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허망한 기분으로 며칠을 방황하기도 하겠지.

         

그러나 그 모든 순간들이 지나간 후에 너는 깨달을 거야. 너는 멈춰 있던 것이 아니라,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게 너는 누구보다 멋지게 대학 생활을 끝마칠 거고, 다들 그러했듯, 나중이 되어서야 그 모든 사건들이 꽤 괜찮은 일이었구나, 하고 여기게 될 거야.

          

단지 하나가 아쉬워. 왜 좀 더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즐기지 못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이곳저곳을 오가고, 모르던 사람들과 티격태격 다투고, 그 모든 게 나중에는 대부분 그리운 빛깔을 띤다는 것을 그때의 나는 몰랐나 봐. 항상 습관처럼 해왔던 불안이, 그 귀한 시간들을 좀 더 진심으로 보내지 못하게 했었어.

     

그래도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엽기적인 사고들도 일으키고,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할 특별한 경험들을 앞으로 하게 될 예정이야. 그렇게 너의 올해는 어느 때보다 빛났던 한 해가 될 거고, 그다음 해는 그 전 해보다 더 빛나는 한 해가 될 거야. 그러니 앞으로의 길이 이럴 것이다, 라는 단정을 짓지는 말기를 바라.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앞으로의 일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야.

           

그런 점에서 사람은 누구나 무식해. 무식한 사람. 너는 언젠가 반강제로 끌려나간 모임에서 연로하신 교수님으로부터 그 말을 듣게 될 거야. 너는 그날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밤을 지새우겠지만, ‘무식’이라는 단어는 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될 거야. 너를, 곧장 어른으로 만들어주진 못하지만, 불안과 우울에서 너를 끄집어내 줄 마법의 단어, 무식.

          

어느 새해에, 너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옛날 영화를 보다가 문득 그 말을 또 발견하게 돼. 불량배가 주인공에게 “너는 왜 사냐?”라고 물었을 때, 주인공이 이렇게 대답하겠지. "혹시 몰라서요." 라고. 너는 그 말을 듣고 비로소 알게 돼. 혹시 모른다고. 일 년, 삼 년, 오 년 뒤의 나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지는 모른다고. 그렇기 때문에,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삶인 걸 알기에, 자기 삶을 함부로 비관하지는 않아도 좋다고. 너는 무식해. 나도 무식해. 그래서 앞으로 일어날 좋은 일들을 예측하지 못한 채 두근거릴 수 있어. 그게 지금의 내가 사는 이유고, 이제 네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 거야.

     

이 편지를 쓰다가 벌써 밤이 되어버렸네. 오늘 저녁엔 샤브샤브를 먹으러 가. 누구랑 먹으러 갈지 예측이 돼? 지금 네가 생각한 답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혹시 모르지. 네가 기대하던 일이 기적처럼 이루어졌을지. 이런 장난스런 말이 나오는 거 보니, 이곳의 나는, 그래도 꽤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건투를 빌어. 나는 항상 너를 응원해 왔으니까.

          

무식한 내가, 즐거움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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