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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조금만 더 사랑해주세요.


(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사랑하는 ‘H’에게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낮과 밤이 바뀐 채 밥도 거르고 우울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수면은 우울을 피하는 최고의 방법인 동시에 우울의 구덩이를 깊어지게 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나요? 산책이라도 하고 오시는 걸 추천드려요.


2년 전 이맘때쯤엔 제 자신이 마음에 안 들었던 게 기억이 납니다. 잘한다고 믿어왔던 것들은 이렇게나 넓은 세상에서 참 보잘 것 없는 실력이었고 소심한 성격에 침대 밖으로 나가질 못하고 그 좁은 공간에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설렘으로 가득해야 하는 대학 생활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좁은 창으로 바라보는 타인들의 세상은 고립된 제 세상과 달리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 스스로를 계속해서 갉아먹었습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작은 것 하나까지도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참을 수 없었습니다. 끝없는 자기 혐오는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어떤 의욕도 사라지게 만들었어요. 분명 고등학교 시절의 저는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었는데 말입니다.


무기력에 빠져 하고 싶은 건 잠을 자는 것뿐. 눈을 뜨면 괴로웠습니다. 김우진의 <사와 생의 이론>이라는 시를 곱씹었습니다. ‘사는 것이 죽음이 되는 일도 잇지만, 쥭음이 사는 수가 잇는 이치가 잇는 것을 아오?’ 알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참으로 살려고 사를 바라고 있다며 울음을 참지 못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지금 당신도 그런 일을 반복하며 아파하고 있겠죠. 2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그 시간이 원망스럽다거나 후회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가여울 뿐이에요. 그 시간들 덕분에 스스로를 사랑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의 행복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 때 스스로를 조금만 덜 미워했다면, 조금만 더 소중히 대해줬더라면 덜 아팠을까 하는 생각을요.


위로를 받을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당신에게 제가 보내는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싫어할지라도 저는 이 세상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괴로운 시간을 견디며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눈에는 그런 당신이 눈이 부시게 빛납니다. 4년 전쯤에는 담장에 피어 있는 개나리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작지만 별처럼 반짝거리며 빛나는 개나리꽃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4년이 지난 지금 저는 4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제가 개나리꽃 같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그 노력의 결과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지요. 그 순간 순간들이 반짝거려서 개나리꽃 같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고 사랑스러운 당신. 스스로를 조금만 더 사랑해주세요. 누군가에게도 특별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땐 저를 생각해주세요. 저에게 당신은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 가엽고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요.


가여운 당신에게 당신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드릴게요. 꼭 마음에 두고 우울이 발목을 잡을 때마다 하나씩 해보는 걸 추천 드립니다.


하루에 두끼는 챙겨 먹어야 해요. 밤낮이 바뀐 삶은 일상을 사랑하는 데에 별로 효과적이지 않더군요. 어둠은 사람을 사색적이게 만들어요. 우울에 대해 더 깊게 파고들게 만들죠. 잠이 많은 당신에게 일찍 일어나는 건 무리일 테니 적어도 점심, 저녁은 챙겨 먹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세요. 날씨 좋은 날 산책도 중요합니다.


곧 4월이 다가오네요. 당신은 ‘역시 4월은 잔인한 계절이야.’라며 흐드러지게 예쁜 벚꽃과 우울한 당신 스스로를 비교하려나요. 그래도 아름다운 계절을 그냥 흘려보내긴 아깝습니다. 친구와 혹은 부모님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일은 즐거운 일일 거에요. 천천히 걸으며 봄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유 모를 사랑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근래에 저는 집에 돌아오면 따뜻한 차를 우려 작은 과자를 곁들여 마시고 있습니다. 저를 충만하게 하는 것 중에 하나에요. 나를 위한 선물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어른이라고 하더군요. 산책도, 과자와 함께 즐기는 티 타임도, 모두 온전히 나의 기쁨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이니 나에게 시간을 선물한 것 아닐까요? 시간을 선물한다니 정말 멋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너무 과거에 매몰되어 있지 마세요.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입니다. 생각해봐요. 당신 고등학교 다닐 때 중학교를 그리워했죠? 대학교에 와서는 고등학교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구요. 과거의 기억은 언제나 현재의 일들보다 좋아보여요. 괴로운 현재를 즐겁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는 미래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불안한 미래 말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를요. 부끄러워도 괜찮아요, 터무니없고 보잘 것 없어도. 누군가에게 당신이 원하는 미래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보세요. 그 미래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이면 더 좋아요. 맞이할 내일이 설렘으로 가득할 거에요.


아픔으로 가득했던 제 첫 대학 생활이 당신의 아픔에 조금의 위로가 되었다면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H’양, 아픔은 성장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감정이니까요, 아픔을 겪을 때면 ‘더 좋은 사람이 되었구나’ 정도만 생각하고 일어나길 바라겠습니다. 앞으로의 당신의 일상에 아픔을 상쇄할 정도의 소소하게 웃을 일들과 사소한 행복들이 끊이질 않기를.


조금은 먼 곳에서 당신을 끔찍이 아끼는 ‘H’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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