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고려대학교 커뮤니케이션팀)
2015년의 나에게.
안녕, 제이야. 이 글은 2023년의 내가 2015년의 너에게 보내는 글이야.
마지막 학기 수강 신청을 하고 난 다음 날에 이 편지문 공고를 보게 되다니, 동기들 중에서 가장 늦게 졸업하지만 그래도 엉성한 마무리라도 지난 8년여 간의 안암에서의 생활을 회고하고, 2015년의 너에게 그동안 다사다난했던 내 학부 생활을 정리하고자 이 편지를 쓴다.
나에게 고려대에서의 학부생활은 실패한 기억들이 참 많다.
나는 나름 우리 동네에서는 공부에서 한 가닥 하는 놈이었거든? 근데 고려대에 입학하니 주위에 나보다 똑똑한 놈들 천지더라. 내 그릇의 한계를 느꼈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친구들이 있었고,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진리들이 있었어.
내 첫 연애 또한 고려대였어. 네가 아마 신입생으로 입학하면 우리 학교만의 특별한 문화인 ‘밥약’ 이란 걸 하게 될 텐데, 나는 첫 밥약을 한 같은 반 선배랑 사귀게 되었지. 그리고 1년도 안되어서 헤어지게 돼. 그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고 수업도 결석하면서 F투성이인 성적표를 한 학기 받게 된다? 나는 그거 계절학기로 복구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임마 ㅋㅋ
그리고 학부생활 중에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지만 서울에 혼자 올라와 있는 아들이 걱정 끼치기 싫다고 말하지 않은 부모님도 있다. 그 때의 충격을 계기로 너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돼.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앞으로의 네 학부생활을 찝찝하게만 만들테니 하지 않을게.
다만 너에게 여러 가지 충고를 해주고 싶다.
첫째,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것이 좋아도 챙길 건 챙기자!
고등학교때와 달리 지금 네 옆에 있는 동기들, 친구들은 전국에서 똑똑하다고 손에 꼽히는 친구들을 모아서 데려 놓았어. 자만심을 가지지 말고 겸손하게 네가 원해왔던 진리들을 탐구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가 8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느낀 점은 대학교는, 특히 고려대는 도서관등 학술시스템이 굉장히 잘 갖추어져 있다는 점이야. 이 학교에 처음 입학하고자 다짐했을 때를 생각하며 네가 원하는 진리를 탐구하고자 한다면 그에 걸맞은 기반시설, 시스템은 충분히 갖춰져 있다.
둘째, 그래도 공부만 하지는 마라.
내 첫 연애는 정말 순진했던 때의 연애라서 이별을 겪었을 땐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듯 했지만, 세상에서 그만큼 행복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한 학기 성적과 바꿀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 같아. 연애를 하면서 타인에 대한 이해심, 초중고등학교 내내 공부만 해왔던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배울 수 있었다. 대학교라는 공간에서 학문을 탐구하는 것 만이 아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고 문화활동도 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그리고 인간관계 또한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셋째, 항상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자.
8년이 지나서야 졸업 예정자가 되어 편지를 쓰지만, 이렇게 막상 편지를 쓰려고 하면 정말 생각나는 것이 별로 없는 듯하면서도, 정말 많다. 즉 정리가 안된다는 거야. 항상 기록하자. 사진을 남기고, 대외활동, 봉사활동, 연애, 친구들과의 추억 등등 어차피 시간 지나면 까먹게 되고 남는 건 기록이며, 증빙할 수 있는 것도 서류고 기록이야. 꼭 기록하고 꼭 남기자. 내가 너
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넷째, 실패해도 좋으니 다양한 경험들을 해보자.
나는 이제와서 2015년의 너에게 다시 충고하는 입장으로 편지를 쓰지만, 다사다난했던 나의 학부 생활을 그다지 후회하지 않는다. 학점 복구한다고 초과학기 하느라, 고시 생활 하느라, 이제야 졸업하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아. 인생은 상태함수가 아닌 것 같아. ‘처음’과 ‘끝’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네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그러한 경험과 배움이 축적되어 지금의 졸업생인 ‘나’를 만들었으니까.
나는 고려대학교에 와서 정말 소중한 친구들을 얻었고, 네가 입학할 때 가졌던 꿈과는 다소 다른 꿈을 꾸게 되었고, 여전히 치열하고 열심히 살고 있어.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았고, 평생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를 찾았으며,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대학입시 때보다 더 치열하게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다. 여러 가지 사회경험과 학부 생활, 고시준비 등을 통해 실패투성이인 채로 졸업하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2500자라는 글자수 제한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것을 배웠으며 아직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열정적인 2023년의 내가 있으니 그래도 나의 학부 생활도 꽤 괜찮았던 것 같네.
그래도 아무거도 모르던 어리숙한 2015년의 나를 생각하면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나온다. ㅋㅋ. 어쨌든 앞으로의 험난하고 재밌는 대학생활을 환영하고 그래도 졸업할 땐 네 생각보다 꽤나 좋은 친구들과 교수님, 그리고 엄청나게 발전되어있는 너를 얻어갈 수 있을 테니 건투를 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