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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꿈꾸는 나’로 살겠다고 해

  • jikim001
  • 2024년 8월 13일
  • 2분 분량

(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2019년 3월 4일 월요일. 멋도 부릴 줄 몰랐던 너는 분홍빛 코트에 여전히 질끈 묶은 머리를 하고 김대건관 앞에 내렸어. 2교시 ‘현대동아시아의형성’을 들으러 가던 길이었지 아마? 우리 딸 첫 등교라고 건물 코앞까지 데려다준 엄마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너를 불러 사진을 찍어줬지. 지금 보니 정말 풋풋했더라 너. 알다시피 대학생 티는 하나도 안 났지만 말이야. 누군데 이렇게 초면부터 무안을 주냐고? 안녕, 나는 스물다섯이 된 2024년의 너야. 이렇게라도 이야기 건넬 수 있어 정말 반가워.

     

너는 나한테 뭐가 궁금할까? 지금 뭐하고 있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든 게 궁금하겠지? 음, 우선 여전히 호기심이 많은 탓에 결국 세 개의 전공을 듣게 되었고 이제는 드디어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어. 그때의 너보다 똑똑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한 경험으로부터 삶의 지혜를 쌓아왔기에 조금 더 현명하다고는 할 수 있겠다. 너도 날 그렇게 봐줬으면 좋겠네.

     

아, 그리고 많은 발전이 있었어. 혼자 지하철 타는 것도 생경했던 너는 홀로 비행기를 타고 50일 동안이나 자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아이가 되었어. 화장품 살 줄도 몰라 고등학교 졸업식 날 선생님들께서 “우리 혜교는 어쩜 이렇게 꾸미는 법을 하나도 모를까” 핀잔 아닌 핀잔을 하시며 손수 화장을 해주실 정도였던 너는 그래도 이제 꾸미는 방법 정도는 알아. 작년까지는 응원단 활동하면서 무대 화장도 했는걸. 물론 아직도 엄청 귀찮아하지만 말이야. 그러니 남들처럼 꾸미지 못함에 조바심 낼 필요는 없어. 너만의 매력과 방식을 터득하는 날이 분명히 오니까.

     

너는 2020년 1월 1일이 되던 날 펑펑 울었어. ‘스무 살’이라는 특권을 내려놓는 게 못내 아쉬웠거든. 편의점에서 처음 주민등록증을 내보였을 때, 몇 살이냐는 질문에 속으로 3초 정도 배시시 웃음 짓고 “스무 살이요” 대답할 때 무지 신났을 거야. 나이가 벼슬이라는 말은 스무 살을 위해 존재하는구나 싶어. 너는 그런 나이를 살고 있는 아이야.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더 값지게, 신나게 보낼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고 넌 결국 해냈어. 대학생 되어서도 놀이공원 한번 안 갈 것 같다는 말을 듣던 너는 이제 “내가 아는 사람 중 네가 제일 재밌게 사는 것 같아”라는 이야기들을 듣게 되거든.

     

힘든 순간도 분명히 있었어.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던 시간들, 영원히 열리지 않을 듯한 기회들. 23살이 되던 2022년, 너는 도망치듯 서울을 떠나 완도의 한 절에 템플스테이를 가게 돼. 거울 속 23년 서울 토박이는 ‘땅끝대로’라는 표지판을 보고 아찔한 전율과 설렘에 괜히 캐리어를 더 꽉 쥐어 보였지. 그곳에서 만난 환갑의 처사님이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셔. “꿈만 같은 대학생 시절, 해보지 않고 후회하지는 마십시오. 그때가 선명한 것처럼 그때의 후회 또한 여전히 생생합니다. 목표가 있다면 도전하고 사세요. 참 젊은 나이입디다.” 그리고 너는 ‘꿈꾸는 나’로 살겠다고 해. 신중하지만 도전적인 자세로 더 나은 나를 위해 꿈을 꾸는 나 자신, 그리고 그런 내가 기대하는 모습으로써 내가 꿈꾸는 나. 이 중의적인 문구를 믿어보자고.

     

너에게 편지를 쓰며 지나온 5년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니 아득하고 거대하게 다가온다. 이 거대함을, 이제 갓 스물이 되어 초롱초롱한 눈과 부푼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 너에게 전하려니 내가 다 떨리고 긴장되는 거 같아.

     

몇 년 뒤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영화가 개봉할 거야. 그 주인공은 과거 상심에 빠져있던 어린 시절의 본인에게 이런 말을 해. “아침이 오고 또 밤이 오고 그것을 수없이 반복하며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 거야. 나는 스즈메의 내일이란다.” 그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엄마가 이런 말을 할 거야. “너도 어린 너를 만나게 되면 당차고 씩씩하게 잘 클 거라고 말해줄 수 있을 거 같아. 지금 네가 그렇게 살고 있잖아.” 너는 그런 아이고, 그런 아이가 될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해줄 수 있게 더 당차고 씩씩하게 자라날 거거든. 그러니 우리 서로 응원하자. 우린 잘 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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