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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너의 숨들은 나의 어딘가에 생생히 남아있다는 걸 잊지 마

(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오래 머금은 나의 ‘새여름’에게.


새내기 소원아, 안녕. 나는 이제 2학년이 되는 소원이야. 잘 지내고 있지? 너는 벚꽃이 조금씩 지기 시작한 지금 즈음, 중간고사를 마치고 열심히 놀고 있을 거야. 1년 전을 돌아보면 한여름의 밤처럼 모든 걸 낭만으로 취급하다가도, 시간이 지나 푸른 멍의 열병을 앓았던 적도 있었어. 더위를 핑계로 에어컨 밑에서만 청춘을 낭비했던 시간도 있었고, 여름의 시작에 앞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잠재운 적도 많았던 거 같아. 새로우면서도, 찝찝하고, 아주 뜨거웠던 스무 살의 나날들이 마치 새여름이란 계절 같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나도 내 모르는 모습을 알아가는 경험은 꽤나 특별했지. ‘대학’이라는 거대한 목표가 사라지고 난 후, 나에게 태울 수 있는 것이라곤 한 번도 연소된 적이 없는 자유로운 삶이었거든. 책상이라는 거대한 족쇄에 묶여 수학 문제를 풀지 않아도 괜찮은 삶은 꽤나 찬란하다고 느꼈던 거 같아. 고등학교 때 ‘모범생’이라고 불리던 영광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어. 그렇지? 시간이 지나 조금은 공허했을 수도 있어. 고등학생 때에 비해 게으르고 나태했던 삶을 찬란하다고 착각했던 것이 후회되었을 거야. 주어진 일들만 다 해내면 훌륭한 학생이라고 여겨졌던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립기도 했던 거 같아.


2학년이 되기 전 방학에 나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어. 마음이 탁 트이는 바다도 보고, 혼자 여수 여행도 가보고, 다양한 책도 읽으면서 어떤 삶을 살아야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거든. 나는 신입생의 너에게 그만큼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 내가 삶을 많이 살아본 건 아니지만, 때로는 항상 ‘최선의 나’ 일 필요는 없더라고. 그동안 하루 15시간씩 공부하면서 꿈을 위해 힘껏 달려왔으니, 잠깐의 쉼은 더 높은 도약을 위한 것이란 걸 잊지 마.


새내기의 나는 되려 무엇보다도 값진 것을 배웠던 거 같아. 온통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1년 전 나는 꽤나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거든. 네 곁에 있는 주변 사람들 덕분이야. 그 자체만으로도 넌 충분히 온전한 스무 살을 보내고 있어. 가족들과, 동기들과, 연인과 많은 추억을 쌓아가면서 단순한 학업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것들을 배운 게 아닐까? 다신 돌아오지 않을 스무 살의 새여름이잖아. 벅찬 숨, 더운 숨, 아렸던 숨, 때론 무거웠던 한숨. 모든 너의 숨들은 나의 어딘가에 생생히 남아있다는 걸 잊지 마. 오랜 날 흘러도, 너의 새여름은 주름 하나 없이 반짝 살아있을 거야.


지금의 나는 진짜 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을 찾고, 그것을 향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 속력은 견줄 대상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기에 비교하지 않고 나아가는 삶을 노력하는 중이야. 물론 지금도 난 여전히 나 자신을 힘껏 사랑하지 못하고, 남들과 비교도 하면서 나 자신을 조금은 꾸짖을 때도 있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며 울며 지내는 날도 있어. 하지만 내 스무 살이 생각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처럼, 난 지금도 무척 행운이 가득한 삶을 살고 있을 지도 몰라. 우리가 향유하는 당연한 것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날이 언젠간 올 테니까.


그러니까 너도, 나도 약속하자. 구월이며 시월의 서늘함이나 다가올 어느 시간대의 찬란함을 담보하지 않아도,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어도 예쁜 순간들을 아끼려고 노력할 것을. 비참하고 초라한 마음들도 마음임을 받아들일 것을. 활강하는 낙조의 끄트머리에서도 하늘을 보듯이, 우리가 가진 호수 물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을 것을. 연약함으로만 뭉쳐진 덩어리라도, 유성처럼 찬란히 살아낼 것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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