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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스로를 좀 들여다 봐줬으면 좋겠어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To. 언제나 욕심이 많은 나에게.


안녕 J야. 새내기 시절의 너는 3학년이 까마득하고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


놀랍게도 지금의 너는 3학년을 앞둔 휴학생이야.


욕심이 많은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골랐어. 너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재능도 많은 너는 12년 동안 염원하던 ‘새내기’라는 왕관을 쓰면서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었단다.


서강대의 문턱을 밟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그 순간, 코로나로 연기된 수능 날 귀가하던 차 안에서, 엄마랑 부둥켜안으며 울다가 사고가 날 뻔한 것 기억나니? 정말이지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그만큼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은 처음이었지. 서강대라는 학교를 오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잖아.


미대만을 바라보던 미대입시생이 갑자기 예체능과는 거리가 다소 먼 서강대에 들어오게 될 줄 어찌 알았겠어. 한편, 입시 때를 생각하면 그 노력하던 모든 시간이 마냥 즐거웠다고 하면 거짓일 거야. 미대 입시를 포기하겠다고 말함과 동시에 주변에서 쏟아지던 야유와 저주. 그로 인해 더 심해져 가는 불안함 속에서 나는 해냈어. 그렇게 어렵사리 들어온 대학이라 그런지 더더욱 남들과는 다른 대학 생활을 보내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면서 스스로를 혹사한 면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

고등학생 때부터 난 늘 남들과는 달라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며 살았었어. 남들보다 2배는 더 잘살고 싶고, 남들이 안 해본 걸 해보고 싶고, 남들이 갖지 못한 걸 가지고 싶은 욕심이 누구보다 크고 그를 위해 살았던 것 같아. 욕심이 많은 나라서, 1년 동안 가장 큰 동아리의 머리도 되어보고, 질릴 정도로 술도 먹어보고, 질릴 정도로 사람도 많이 만나보면서 코로나 학번 중에서는 최소한 최고가 되자는 생각을 줄곧 가져왔었잖아.


솔직히, 나는 이 행동들을 막연히 후회하지는 않아. 내 성격상, 이렇게 살지 않았다면 나는 두고두고 영원히 후회했을 것이야. 20살 새내기는 되돌릴 수 없지만 학점은 돌릴 수 있잖아. 그렇지!

웹툰 속에서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F를 받아볼 줄 고3 때의 너는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이 역시 나의 자산이 될 경험이라고 생각해. 대학이라는 목표를 이룬 내가 매너리즘에 빠질 뻔할 때마다, 성적표가 종종 정신 차리라고 소리치니까 말이야.


하지만 J야, 2년 동안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느낀 것이지만 모든 것에는 정도가 있는 것이더라.


20대라는 시간이 시한부라고 생각해왔던 것은 여전히 지금도 똑같아. 20대는 괜히 청춘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별거 아닌 시간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그 20대를 허투루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은 조금 덜어 놓았으면 좋겠어.


지금의 내가 1학년 때 하지 못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여유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야.


내가 2년 동안 가장 스트레스 받은 문제가 뭔고 하니, 친구 관계였었어. 대학에 와서 진짜 이 사람은 내 평생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겠구나 싶은 인연도, 정말 절대 안 맞겠다 싶던 인연도 고등학생 때와는 다르게 느긋하게 마음을 갖고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더라.


또, 친구든 연인이든 사랑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친밀함이 나온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막상 진짜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고장이 나곤 하지. 이 인간관계를 꿰뚫는 모든 것이 스스로 여유를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더라고.


이렇게 말하는 나는, 아직 여유를 가지지 못해서 인간관계에 휘둘리고, 치이고 있어. 때로는 미움을 받을 용기를 가지고서 사람을 잘 여과해야 하는데, 나는 이론만 충실한 바보같이 살고 있어. 여유를 갖지 못해 스스로를 사랑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채찍질하는 내가 너무 싫을 때가 있어.


심지어 때론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함에 사로잡혀 스스로 굴을 파고 들어가 무한한 우울함에 완패하고는 해. 새내기 시절의 나는 부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술먹는 것, 대외활동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좀 들여다봐 줬으면 좋겠어.


이제라도 나는 조금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보다 더 노력해보려고. 평생 상상하지 못했던 온전히 쉬는 휴학 기간을 보내면서, 내 스펙을 위해 한 줄, 한 줄이 아니라 내 내면을 위해 한 줄, 한 줄을 채워보고 싶어.


사실 지금도 슬금슬금 ‘아, 너무 많이 쉬어버리면 안 될 것 같은데’, ‘남들은 칼졸업하는데 나는 이래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고 캠퍼스 픽에서 재밌어 보이는 대외활동들이 ‘너 온전히 쉬는 건 좀 그렇지 않아?’라고 잔소리하고 있어.


하지만 나는 용기를 내서, ‘나는 나야. 난 내 속도로 갈 테야.’ 하면서 쉬고 있는 스스로를 응원하는 중이란다. 내가 다시 돌아간다면, 너를 좀 더 사랑해주려 노력했을 것 같아. 남들에게 사랑을 구걸하며 여유 잃기보다는 스스로를 더 사랑해줘. 너는 사랑 받을 자격이 있어.


From. 2년 뒤의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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