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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는 길은 없어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이유 없는 길은 없어, 강우야.


강우야 안녕? 너는 이제 대학교에 입학하겠지만, 나는 이미 졸업했어. 내가 미리 경험한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싶어, 편지를 적어. “세상과 호흡하며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고 삶의 의미를 찾아라.” 내 대학생활 5년의 지혜야. 내게 대학생활 동안 계획과 다른 새로운 길을 걸어가며 이유 없는 길은 없다는 걸 배웠거든. 내 이야기를 잘 들어봐.


대학생이 되니까 주변에서 외교관 등 장밋빛에 물든 꿈들을 내게 심어줬어.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더라고. 내가 진정으로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채, 주변의 기대에 얽매이게 된 거야. 스스로에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물어보기보다는 학교 선배에게 "외무고시를 준비하면 승산이 있을까요?"라는 얼빠진 질문이나 했어. 주변의 기대를 부응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외교관, 변호사, 기자 중 무엇이 제일 괜찮을지 저울질만 한 거야.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게 수없이 많은데, 주변의 기대만 좇으며 세상을 비좁게 보았어.


이렇게 반년을 날렸어. 저울질만 하니, 노력할리는 만무하지. 동기들은 앞서나가는 것 같은데, 나만 우두커니 서있는 것 같아 암담했어. 고민하며 허송세월 시간을 보내지만 결정은 되지를 않으니, 조급해지기 시작했어.


스스로를 가둬놓은 벽을 허무를 수 있었던 건 세상과 호흡할 때였어. 내가 직접 무언가를 해보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배워나갔거든. 기자인 친구가 내게 신문에 실릴 글을 적어달라고 부탁한 게 그 시작이 되었어. 평소 그 친구에게 글을 써서 보내곤 했거든. 글을 쓰는 게 즐거워서 신문사에 정기적으로 투고하려 했어. 친구가 "그럼 차라리 강우야, 서강학보 들어올래?"라고 제안했어. 때마침 기자 한 명을 채용하더라고. “그래 글 쓰는 걸 좋아하니, 기자를 준비해보자.” 교내신문사에 덜컥 지원했어.


그렇게 기자로 3년을 일했어. 기자 임기를 채워야 했기에, 늦은 나이에 입대하게 되어 장교로 지원했고. 기자로 일하면서, 기자로 진로를 정했냐고? 그건 아니야. 기자는 어디까지나 ‘해설자’였거든. 내가 열심히 보도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커다란 답답함을 느꼈어. 그래서 기자가 되고자 3년간 일 했는데, 그 꿈을 포기했어. 그러면서 장교후보생으로 2년간 훈련을 받았어. 그래서 장교가 되었냐고? 그것도 아니야. 장교가 되면, 내가 찾은 새로운 꿈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했어. 결국 나는 초기에 설정한 목표를 이루지 못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것 같자나? 하지만 그 시간이 절대 헛되지 않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기자활동을 하며, 내가 물어보는 걸 참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취재도 중 100번 넘게 인터뷰 하며 내가 질문하는 걸 이토록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 질문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롭더라고. 그리고 취재 중 ‘공인노무사’를 알게 되었어. 기자의 꿈을 서서히 접을 즈음 노무사 협회장과 인터뷰했거든. 이름도 생소했는데, 인터뷰하며 노무사가 “체불임금 청구”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스스로 노무사를 “사람들이 일터에서 흘린 땀을 더 값지도록 만드는 직업”으로 정의 내렸지. “진짜 보람찬 직업이다.” 인터뷰가 끝났는데도 심장은 계속 두근두근 뛰었어.


장교후보생 기간에는 내가 누군가를 도울 때 행복하다는 걸 배웠어. 40km 행군 중 동기가 포기하려던 찰나, 내가 그의 20kg 가방을 대신 짊어줄 때 깨달았어. 걸을 때마다 바늘에 찔리듯이 아팠는데도, 끝까지 가방을 들었어. “고맙다 강우야.”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는 사실 그 자체로 가슴 벅차게 뿌듯했고 행복했어. 내가 남을 도울 때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걸 배우는 순간이었어.


임금 체불 당한 친구를 도와준 건 내 삶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어. 두 달치 임금 68만원을 체불 당한 친구를 돕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공부했고, 친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물어보며 어떤 법 조항이 적용되어야 하는지 고민했어. 그 결과 돈을 받아냈어. 이때 느꼈던 형용할 수 없는 뿌듯함은 지금도 잊지를 못해.


마침내 <기자, 학군단, 체불임금 청구>, 이 모든 경험들이 한데 어우러져 노무사를 준비하기로 결심했어. 억울한 노동자가 어떤 상황에 놓였는지 질문해서, 그에 맞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야. 나에 대해 알아가며,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았고, 그 직업을 가지면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과감히 장교를 포기했어. 장교 복무 중에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기 어려우니까.


기자로 3년, 장교후보생으로 2년이 이유 없는 길로 보일 수 있어.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아. 오히려 그 길을 걸어갔기에, 내가 지금의 이 길을 걸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그 시간이 내게는 너무나 값져. 그 여정은 내가 스스로에 대해 치열하게 배우는 시간이었고, 또 내 삶의 의미를 실현해줄 직업을 찾은 소중한 기회를 내게 선사했으니까. 그러니 강우야, 고민하는 대신 세상에 투신해. 어떤 길이든 좋으니, 경험하며 나를 찾아가. 그렇다면 결국 스스로가 보이게 될 거야. 이유 없는 길은 없어 강우야. 내가 걸어온 길은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에게 의미가 있길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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