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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나를 가장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어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사랑하는 나에게

안녕 새내기 시절의 지민아? 20대 중반인 지금, 나는 내 생일을 맞이해서 과거의 너에게 편지를 써. 우선 1년 간의 길고도 험난한 재수 생활을 무사히 마친 걸 축하해.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고됐다. 재수 학원에서 오래 앉아 공부하느냐고 소화불량으로 애먹었던 그때가 생각나네. 정말이지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생활을 스무 살의 너는 어떻게 해냈는지 참 대견해. 서강대에 합격한 순간은 4년 뒤인 지금도 생생하다? 집에서 혼자 합격창의 “오랜 노력과 인내로 맺은 아름다운 결실을 축하합니다.” 라는 문구를 보고 눈물이 왈칵 터져버렸지. 아마 네가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 누구보다 간절했던 그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서 그랬을 거야. 너무나도 수고했어.

그렇게 서강대학교에 입학한 너는 앞으로 펼쳐질 즐겁고 열정으로 가득한 대학생활을 기대했지. 처음엔 꽤나 즐거웠어. 처음 만난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기숙사에 들어가는 생활이 어찌나 재밌던지. 대학에서 처음 느끼는 자유가 너무나 신기했어. 하지만 따뜻할 것만 같았던 대학생의 삶은 그 온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던 것 같아.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대학이라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고 내 24시간이 거의 그 목표를 위한 행동들로 가득 찼었어. 그러다 보니 나와 대화하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재했던 것 같아.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건 웃기게도 새내기 때 한 소개팅 이후부터였어. 아직도 그 장면은 생생하다. 인생 처음 받아보는 소개팅이었으니 말이야. 신촌의 카페에서 동갑인 친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 친구는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미래를 위해 해나갈 앞으로의 계획을 자신감 있게 이야기해주었어. 반면 그때의 너는 좋아하는 음악 장르조차 정확하게 이야기하질 못했지. 괜히 풀이 죽었고, 그 친구와 괜히 비교가 되더라. 2n년 간 살아오면서 좋아하는 음악, 취미 하나 모르는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어. 이 작은 원망의 불씨는 꽤 오랫동안 너를 붙잡았지. ‘왜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에 대해 생각해주지 않았던 걸까’ 라는 생각이 새벽만 되면 머릿속을 지배했어. 그 생각에서 탈피하려고 내가 좋아하는 걸 찾아보려는 노력도 많이 했었지. 봉사도 해보고, 공연도 보러 다니고, 동아리도 해봤는데 쉽지가 않았어. 전공도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 같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니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 진로 고민을 하다 뛰어든 시험에서도 떨어지고… 사람을 새로 사귈 때에도 가까운 관계가 되지 못하면 괜히 내 문젠가 생각하게 되고, 내 성격을 탓했지. 그렇게 한 동안 나 자신에 대한 주관이 잘 잡히지 않았던 것 같아.

그러다 작년 추석이었나? 그 때쯤 본가에 내려가서 가족들이랑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그 때 가족 앨범을 정말 오랜만에 열어봤었는데, 기억나? 10살짜리 귀여운 꼬마가 교실 앞에서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발표하는 사진들을 봤었어. 엄마는 내게 “이때 네가 나랑 네 아빠같이 멋진 어른 되겠다고 엄청 씩씩하게 발표했던 거 기억나네.”라고 말했어. 그 말을 듣고 어린 시절의 나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분명 나는 멋진 어른이 될 거라는 소망을 지닌 채로 학창 시절을 보냈을 텐데, 20대가 된 나는 그런 과거의 나를 원망이나 하고 있고 말이야. 생각해보면 입시부터 시작해서 전공 공부, 대외 활동, 불합격했지만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시험까지… 비록 다른 사람들만큼 인생에서의 뚜렷한 목표가 존재하진 않았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달려왔었는데. 그런 나를 칭찬해주지 못할망정, 과거의 나를 탓하기만 했네.

21살의 지민아, 오늘 이 편지를 통해서 너한테 너무나도 미안했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어. 너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고, 가능성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 줬으면 좋겠어. 힘든 재수생활을 자랑스럽게 이겨냈고, 나라는 사람을 탐구하기 위해서 여러 활동에 도전해보았고, 시험에 실패한 걸 발판 삼아 지금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잖아? 비록 이런 발상의 전환을 그 때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방황했던 네가 있었기에 지금은 그 누구보다 나를 더 사랑해주고 있어. 누구나 부족한 점이 있지. 20대 초반의 너는 그 단점을 나의 일부분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단점들을 나와 동일시했기에 힘들어했던 것 같아. 이제는 단점을 내 일부분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내가 되었어.

지금의 나는 매일 일기를 쓰고 있어. 완벽했던 날에도, 완벽하지 않은 날에도 그날 느꼈던 감정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면서 새로이 발견한 나의 모습을 기록해. 덕분에 이젠 내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는 락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내가 즐겨하는 취미는 블로그에 글 쓰는 것이라 말할 수 있고, 내가 앞으로 펼치고 싶은 미래를 흐릿하게나마 그려낼 수 있었어. 21살의 너, 그리고 현재까지의 네가 너 자신을 놓지 않고 끝까지 너에 대해 고민해낸 덕분이야. 그 시간들을 잘 헤쳐 나가줘서 고마워. 과거의 네가 있었기에, 나는 오늘 나를 가장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어. 아직 거기에 있다면 아낌없이 칭찬해주라. 고마웠어.

너를 가장 사랑하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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