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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나갔던 모든 사람으로부터 생긴 경험으로,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나’를 사랑하지 못한 날들을 살았던 당신에게.

나는 어느덧 학창 시절의 끝을 걷고 있다. 매 순간 앞을 알 수 없어 그 길의 끝이 낭떠러지인 듯 불안해 했던 내가, 참 멀리도 걸어왔다. 20여 년을 살아오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학업의 마침표를 찍게 될 이곳에서,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좋은 건 빠르게 지나가고, 싫은 건 오래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이러한 시간 속에서 나에게 매번 찾아오는 따뜻한 봄과 설레는 가을은 짧았지만, 무더운 여름과 차갑기만 한 겨울은 길었다. 서강대학교에 처음 온 나를 환하게 반기기라도 하듯, 학교의 푸르던 나무들은 나와 사람들의 마음을 머금어 연 분홍의 꽃을 피웠다. 그리고 나의 마음이 안정을 찾아갈 때쯤, 다채로운 색을 띠어 그 마음에 불을 지폈다. 그리고 살이 아리는 차가운 바람이 불 때, 그 불이 꺼지며 나의 마음도 한 층 그 색을 잃었다. 서강 속의 나는, 서강을 품었고, 서강은 나의 마음을 온전히 담아주었다. 그만큼 그 시절의 서강은 참 많은 부분이 나와 닮아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짧고 긴 계절에서의 내 마음의 온도를 기억한다.


나의 학창 시절, 서강 속의 나는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처음 보는 학교 정문과 알바트로스탑을 중심으로 양 갈래로 뻗어나가는 길을 걷는 설렘, 새로 알게 된 친구와 지었던 어색 따뜻했던 미소. 비를 맞더라도 함께 라면 웃음이 끊이질 않았던 그 순간, 힘듦도 청춘으로 빗대어 그저 즐겁기만 했던 시절. 그리고 한데 모여 밤새 조용해지지 않을 대화 소리로 공간을 채웠던 시간까지. 그 모든 순간은 나의 추억이다. 나의 벗들은 이 모든 순간을 추억하게 하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추억 그 자체가 되어있다. 나를 지나갔던 모든 사람으로부터 생긴 경험으로, 더 나은 내가 되어가고 있다. 나 스스로는 아무런 변화도 있을 수 없기에, 그대들로부터 받은 영감으로 또 다른 나를 기대한다. 나를 사랑하는 내가 되기 위해, 이 모든 순간을 잊지 않으며 그대들과 함께였던 시간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평소 민망함에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나의 마음속 깊은 곳들의 감정과 그날의 온도를 이렇게나마 꺼내 놓을 수 있다는 것으로, 제법 의미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때는 정리하지 못했던, 처음이라 알 수 없었던 그 순간의 온도를 이제는 이해합니다. 그래서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그 시절 많은 걸 바랐던 당신에게, 그때 당신이 몰랐던 것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고. 하지만 그러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몰랐을 때만 가질 수 있는 기대감과 두려움, 그 복잡미묘한 감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니까. 그때 그 자체로 당신은 충분히 아름다웠고, 그저 누군가에게 부족함 없이 사랑받았던 당신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바쁘게 흘러가는 바깥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시절에 대한 회상과 함께 이 글을 남깁니다. 오직 내 시간만은 천천히, 안정적으로 흐르길 바라는 마음의 두터워짐을 느끼며, 그리고 그 당시에 는 몰랐던 그 시절의 아름다움을 이제서야 알게 된 내가 전혀 원망스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며. 한낱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당신은 지금 자신의 존재를 어느 정도 알아가면서, 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많은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는 가까운 듯 멀리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당신은 지금의 멋진 나를 만들었습니다. 달이 필요하지 않은 밤이 없고, 당신이 필요하지 않던 이 세상이 없었기에, 그 누구 보다 멋있던 당신과 멋있는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온 밤을 걸으려 합니다. 그대, 그리고 나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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