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용기와 결단이 있다면 네 세계는 타자와 함께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TO. 신입생 시절의 ‘증명’이에게.


정말이지 서강대학교를 눈물 나도록 오고 싶어 했던 너. 깊은 고민 없이 알아주는 대학교에 가면 인생이 술술 풀리리라 생각했지. 그 당시 네가 꿈꾸던 건 ‘자아실현’을 하는 대학생. 독창적이고 개성 강한 자아를 가꾸는 일이 목표였어. 이를 위해 폼 나는 대외활동을 하고 싶었고, 동기들과의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너를 뽐내고 싶었고, 교환학생도 한 번쯤은 다녀오고 싶었지. 전공 공부도 게을리하고 싶지 않았어. 지성이야말로 대학생일 때 갖춰야 하는 요소잖아. 텍스트 독해의 즐거움에 흠뻑 빠진 대학생이라니 얼마나 근사해?

그런데 대학 생활은 꿈꾸던 것과는 조금 달랐어. 처음 동기와 선배들이 모인 술자리에 갔던 날을 기억해. 귀가 먹먹하도록 떠들썩해서 마주 앉은 동기의 말은 잘 들리지도 않았어. 넌 나이와 관심사 등을 묻는 의례적인 질문에 수줍게 대답했는데, 그다지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은 아니었지. 막차 시간까지 술자리는 이어졌는데 그 속에서 넌 동떨어진 섬이나 다름없었어. 좌절의 순간은 계속해서 이어졌지. 전공 수업에서 맞닥뜨린 아리스토텔레스와 시학은 어려웠고 교수님이 나를 지명하지 않기를 바랐어. 교수님과 학문적 대화를 나누겠다는 담대한 포부는 사라진 지 오래였어. 이렇듯 자아를 드러낼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어. 남들과 다른 개성 강한 나를 뽐내는 일이 멀게만 느껴졌어.

막막함에 너는 목표했던 일을 하나둘 내려놓았어. 술자리도 자주 가지 않았고, 전공 시간에 무리하게 너를 드러내려는 시도도 그만뒀어. 대신 학과에서 어울리기 힘들면 동아리에 들어가라는 조언을 읽고는, 중앙 동아리에 들어갔어. 글을 쓰고 서로의 글에 피드백 하는 동아리였어. 그 동아리에서조차 너는 막막함을 느꼈는데, 글로 나를 드러내는 일조차 쉽지 않았거든. 나만의 고유하고 특별한 문장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어. 피드백 하는 일도 고역이었지. 남의 글에서 부족함을 발견하는 일도 어려웠을 뿐더러 더 나아질 수 있는 조언까지 해주어야 했으니까. 항상 말을 내뱉고 후회하기 일쑤였고 멋진 조언을 해주지 못해 자책해야 했어. 그래도 꾸역꾸역 동아리에 나갔어. 남의 문장을 수없이 읽었고, 짬을 내어 고쳤고, 부원들의 피드백을 귀 기울여 들었어. 지금 여기서, 더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은 있었던 거야.

여름 방학을 맞아서는 로욜라 도서관 만레사존에 앉아 책을 읽었어. 오후 한두 시쯤의 만레사존은 평화로웠어. 바람이 불면 푸르른 나뭇잎이 통창을 스쳤고 이따금 나무 위에 앉아있는 새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어. 그러다 너는 한 문장과 마주했어,

“드러내지 않기라는 경험의 중추는-아직 그 경험이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불릴지라도- 자기 증오나 자기에 대한 염려와는 무관하다. 그 중추는 순전히 타자들에게로, 대타자에게로, 피조물들에게로, 세계로 향해 있다.” (피에르 자위, 이세진 역, 드러내지 않기 혹은 사라짐의 기술, 위고, p.92.)

‘드러내지 않기.’ 낯선 표현이었지만 마음에 들었어. 도서관에 숨죽여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너와 꼭 맞는 표현이라고 느꼈거든. 그날 도서관을 내려오는 길에 우연히 동아리 부원을 만나 함께 밥을 먹었어. 부원은 네가 예상치도 못한 이야기를 꺼냈어. 동아리 시간마다 네 피드백에 위로를 받은 경험이 적지 않다는 거야. 자신도 몰랐던 글의 장점을 찾아주고, 따뜻한 말투로 편을 들어주어서 힘이 되었다는 말도 덧붙였지. 네 의견을 앞세우지 않고 남의 말을 먼저 듣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고. 그 말에, 너 또한 얼마나 많은 위로를 받았던지. 그제야 네 존재의 필요성을 찾은 것만 같았어.

학교에서 신촌역까지 걸어 내려오며, 너는 생각했어. 나는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나를 실현했다고. 그제야, 지금껏 가지지 않았던 의문이 떠올랐어. 자아 실현이 대체 뭐지. 왜 진정으로 나를 들여다보기보다 남에게 나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교환학생, 대외활동, 교수님의 인정……. 모두 진정으로 원했다기보다는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서였어. 나만의 개성을 쫓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누군가의 개성이었지. 자아를 드러내려는 욕망을 내려놓자 비로소 나는 피에르 자위의 표현처럼, ‘타자들에게로, 세계들에게로’ 뻗어 나갈 수 있었어. 나 뿐만 아니라 타자와도 마주할 수 있었지.

한국에서 치열한 입시 경쟁을 치르고 입학한 신입생들은 어쩌면, 과거의 나와 같이 증명해야 한다는 욕구에 시달리고 있을 수 있어. 그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그 욕구를 잠시만 내려놓고 멈추어 서서 진정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찾아보라고. 그 용기와 결단이 있다면 네 세계는 타자와 함께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