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에는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 jikim001
- 2024년 8월 13일
- 2분 분량

(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갑자기 나타나서 놀랐지?
굉장히 당황스럽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겠지만, 일단 좀 들어봐. 시간이 많지 않아서 그래.
먼저 지난한 입시를 거쳐 대학생이 된 걸 축하해. 그 기쁨을 충분히 만끽하면 좋겠어. 서강대는 훌륭한 학교거든.
앞으로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될 거야. 이제 넌 성인이잖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졌고 말이야. 지금 당장 뭔가를 준비하라는 건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알게 될 거야.
서강고등학교라는 별명은 들어봤지? 엄격한 학사 제도와 면학 분위기 때문에 그런 거야.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할지 안 할지는 대충 느낌이 오지만, 대학생의 본분은 공부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면 좋겠어. 막상 해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아. 고등학교 때 하던 공부보다 훨씬 재밌을걸?
공부 외에도 할 일이 많을 거야. 넌 대학에 오면 밴드부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지? 그 뜻을 적극 지지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대학 생활을 보내는 건 멋진 일이야. 매일 같이 연습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도 하고, 때로는 의견 조율 과정에서 다투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팀원들과 쌓은 추억들은 아마 오래 기억에 남겠지. 서강대에는 킨젝스라는 중앙락밴드가 있어. 오디션이 부담스럽겠지만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실력보다 열정이니까.
난 네가 다른 어떤 일을 하더라도 괜찮다고 봐. 복수전공을 하거나, 사업에 도전하거나, 해외에서 살아보거나,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겠지. 다만, 시간 관리를 잘했으면 싶어. 자칫하면 처음으로 누려보는 광범위한 자유에 마냥 좋으면서도 소중한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있거든. 멍하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보는 시간도 좀 줄이고. 응? 스마트폰이랑 유튜브가 뭐냐고? 내가 잠깐 착각했네. 나중에 알려줄게. 일단 조금 더 들어봐.
가능하면 연애도 많이 해 봐. 대학생 때야말로 연애하기 좋은 시기잖아. 누군가와 사랑을 나누면서 느끼는 감정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해. 연애하면서 너의 밑바닥까지 보고 나면 한 단계 성장했다고 느낄 거야.
아, 연애를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고?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네. 너무 오랜만이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 봐. 네가 너그럽게 이해해 주렴. 그래도 혹시 아니? 대학생 때 만난 사람과 오래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고 잘 살게 될지.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군대도 가야겠구나. 우리 아버지 세대는 복무기간이 3년이었대. 좀 위로가 되려나? 그래. 여기에 대해서는 말을 줄일게. 그렇지만 젊다고 너무 방심하지 말고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해. 지금부터 관리하면 나중에 분명히 잘했다 싶을 거야.
군대까지 갔다 오고 나면 본격적으로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해 봐야 할 시기야. 우선적으로 취업을 고려하겠지만 회사에 들어가는 것 말고도 길은 정말 다양해. 네가 원하는 일을 찾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이건 되도록 많은 일들에 직접 부딪쳐보고, 경험해 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아. 실은 나도 아직 잘 모르겠거든.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의 목소리를 많이 들으라는 거야. 타인의 의견은 참고만 해.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야. 스피커가 많은 세상이니 사기꾼들도 조심하고. 네 인생이잖아. 답은 너한테 있으니까, 기준은 네가 세우는 거야.
그래도 다른 사람 말고, 내 얘기에는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너를 오랫동안 봐왔던 사람이거든.
지금까지 긴 얘기 들어줘서 고마워. 나도 다른 사람한테는 하지 않는 조언들이야. 너한테는 꼭 말해주고 싶었어.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누가 나를 부르고 있거든.
처음 보는 아저씨인데, 이상하게 낯이 익네. 자기 얘기 좀 들어달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