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단 하나의 이유, 바로 너니까
- jikim001
- 23분 전
- 3분 분량

(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스물둘의 나에게
지금 너는 어떤 얼굴로, 어떤 하루를 살고 있을까. 아무리 예측해 보려 해도 미래란 늘 흐릿한 안개 속 같아서, 이 편지를 쓰는 지금 나는 그저 너의 하루가 너답기를, 너의 마음이 너에게 가장 정직하기를 바랄 뿐이야.
학교는 여전히 즐거운 곳일까? 분명 작년보다 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테고, 낯설던 이름들이 이제는 익숙해졌겠지. 주변의 친구들이 하나둘 진로를 구체화하고, 취업과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하면서 너도 슬슬 마음이 조급해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억나? 너는 늘 속도가 아닌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이었잖아.
피겨스케이트 선수를 꿈꾸며 매일 5시간씩 빙판 위에 있었던 초등학생 때도, 천체물리학자를 꿈꾸며 친구들과 노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했던 중학교 때도 넌 언제나 무언가를 간절히 좇는 아이였지.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그렇게 반짝이던 별들과 수식이 점점 멀게 느껴졌고, 그게 내 길이 아니라는 걸 처음으로 직감했잖아.
진로와 적성에 대한 깊은 혼란 속에서, 결국 우린 잠시 멈추고 방향을 다시 고민했고,
되돌아가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
재수 시절의 외로움, 불확실성, 정체된 감정 속에서조차도 내 마음 한편에는 늘 ‘사람’이 있었어.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고 싶은 마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내가 그런 이해를 받고 싶었던 걸 지도 몰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누군가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싶다는 조용하고 단단한 감정이 결국 나를 뇌과학자이자 신경심리학자라는 새로운 길로 이끌었고, 정신건강과 뇌를 탐구하며 사람들의 마음 병을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치료하고 싶다는 새로움 꿈이 생겼지. 이 과정이 분명 쉽지는 않았지만, 방향을 다시 정한 용기와 끈기, 그리고 끝내 나만의 언어로 ‘꿈’을 다시 써 내려간 그 시간은 지금도 너를 가장 빛나게 하는 자산이 되었을 거야. 그러니 지금의 꿈이 나와 같든 아니든, 네가 어디쯤 걷고 있든, 그 방향이 너다운 길이기를 지금도, 앞으로도 진심으로 바라.
부끄럽지만 내가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알기에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깨달음, 좌우명을 다시 너에게 일깨워주고 싶어, 너 이렇게 깊은 생각도 했다고 말이야ㅎㅎ. 물론 일기장 맨 앞에 써 놓은 글이기도 해서 아직 파란 일기장이 집에 있다면 한 번 꺼내 읽어봐 지금의 나랑 연결될 수 있을지도 몰라! 요즘 난 나를 좀 더 보듬어주고 아껴주자는 다짐을 자주 해. 입시와 재수 끝없는 노력과 상대평가의 연속에서도 버티고 결국 결과를 만들 수 있었던 건 자신에게 엄격했던 성향이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를 돌보고 더 나아가 내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삶을 즐기는 방법을 까먹은 거 같아. 채찍 대신 손등을 토닥이는 법, 그걸 스물둘의 너는 충분히 해내고 있었으면 해.
이 편지를 받을 때쯤이면 거리가 초록색으로 물들고 햇살도 부드럽게 스미는 계절이 왔을 테지. 혹시 올해 벚꽃은 봤어? 제철 과일은 잘 챙겨 먹고? 고등학교 때 그리던 ‘조금 더 성숙한 나’의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 느끼니? 뭐가 됐든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살고 있기를 바라. 우리가 고등학교 때 책상에 붙여놓았던 말 생각나?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당시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그 문장을 품었지만, 요즘의 나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있어. 행복도 말이야 가만히 있다고 찾아오지 않는 거 같아. 그건 어쩌면 밖에서 오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가 만들어가는 감정 아닐까. 시험, 대학, 목표들 너머엔 결국 늘 나 자신이 남는다는 걸 잊지 말자 다짐해.
솔직히 아마 1년 뒤에도 지치고 흔들리는 날이 많을지 몰라. 사람들은 여전히 너를 평가하고, 비교하고, 판단하겠지. 하지만 너만은 너의 가장 든든한 편이 되어주길 바라. 외로움과 불안이 스며들 때 누구보다 먼저 네 손을 잡아줄 수 있는 건 바로 너 자신이야.
어렸을 때 기억나? 놀이터에서 사탕을 입에 물고 뛰놀면서도, 막연히 ‘어른이 된 나’는 멋질 거라 믿었잖아. 그렇게 너는 스스로의 꿈이었고, 지금의 너는 그 꿈이 만들어낸 현실이야. 그러니 이젠 뒤돌아보기보다 앞으로 나아가자. 멀리 바라보되 이 순간이 모여 미래를 만든다는 걸 잊지 말자.
너는 여전히 가장 소중한 존재야. 내가 오늘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단 하나의 이유, 바로 너니까. 편지를 다 읽고 나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지막이 다짐하자, 나 자신을 사랑하고 나를 위해서 행복해지자고. 세상이 등을 돌려도 네가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진짜 괜찮은 삶이라 생각해. 그러니 지금도, 내일도, 앞으로도 혜정아 너무 잘 해내고 있다. 파이팅
가장 따뜻한 내 편인 스물둘의 너에게, 스물하나의 내가. 2025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