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복을 입고 각자의 화분을 가지고 다시 만나자.
- jikim001
- 1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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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겨울도 여름도 아닌 봄의 K에게.
안녕 K. 그곳은 안녕하니? 이곳은 4월인데도 여전히 학과 점퍼를 껴입어야 할 만큼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어. 딱 1년 전 오늘, 2025년 4월 30일은 겨울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애매한 그 중간 봄이야. 초록잎이 무성한 나무와 알록달록한 꽃들이 알바트로스 탑을 지키고 있어.
졸업 유예생인 나는 방송국 PD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있어. 매일 아침 토마스모어관에 지문을 찍고 들어가 6층 언론고시반에서 신문을 읽지. 자, 오늘 신문이 어땠는지 말해줄게. 2025년은 취업률이 역대 최저인 해라고 하는구나. '그냥 쉬는' 청년들 50만, 청년 백수 120만... 무시무시한 헤드라인을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무관했던 통계가 나를 대변하는 숫자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이상해지곤 해.난 대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봄날의 취업 준비생이야. 넌 지금 어디에 있니? 방송국 편집실에 앉아 머리도 못 감고 마감에 시달리고 있니? 아니면… 여전히 토마스 모어관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니? '넌 무조건 멋진 PD가 될 거야, 걱정하지 마!' 같은 소망을 보내고 싶지만, 그 말에 네가 혹시 상처받을까 해서 보내지 않을게.사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K 네가 꼭 PD가 되어 있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있잖아, 4월 1일 만우절 날에 늘 그래왔듯 신입생들이 교복을 입고 벚꽃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더라? 문득 교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 중고등학교 때 우리는 교복을 정말 싫어했잖아. 매일 아침 셔츠를 입고, 그 위에 조끼를 입고, 재킷을 입고, 스타킹을 신고, 속바지를 입고, 치마를 입고... 빳빳한 교복의 질감이 속박처럼 느껴졌던 건지, 우리는 틈만 나면 셔츠 안에 사복을 받쳐 입거나 체육복으로 갈아입었어. 교복을 벗을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었지. 그렇게 벗고 싶었던 교복을 우리는 자꾸 다시 입고 싶어 해. 만우절뿐만이 아니야, 롯데월드 에버랜드에도 우린 교복을 입고 가. 진짜 학생들은 다 사복 입고 노는데 말이야. 교복 입은 사람들 사실 다 성인인 거야. 웃기지?난 지금 내가 원하고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교복 같은 게 아닐지 생각해. 그땐 너무 싫었는데 이제는 왠지 너무 그립거나, 지금은 너무 갖고 싶은데 나중에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거나. 교복이라는 건 미래만 바라보다 놓쳐버리는 오늘 하루의 소중함 같은 거였을까? 그러니까 1년 후의 K야, 네가 지금 어떤 순간에 있든 오늘 하루의 교복을 놓치지 말아줘. 무언가 되기 위해 희생되는 날로 치부하기엔 오늘은 너무 소중한 봄날이잖아. 오늘 햇빛이 끝내주게 좋아서, 오늘 만난 고양이의 감촉이 매끄러워서, 점심 샐러드의 드레싱이 상큼해서, 펼쳐 든 책의 문장이 감동스러워서 그렇게 나는 오늘 하루 교복을 채웠어.
완연한 봄이야. 웅크렸던 생명들이 움직이는 시간이 왔어. 2026년의 K야,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는 PD가 되고 싶다는 너의 꿈이 싹을 피우며 여전히 살아있길 바랄게. 편지를 읽는 넌 편집실에서 음악을 고르며 밤을 지새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흔들 한 문장을 적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지도 몰라. 혹은 더 나은 PD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수도 있고. 그동안 난 매일 아침 토마스 모어관에서 신문을 읽으며 우리의 꿈에 물을 줄 테야. 우리 교복을 입고 각자의 화분을 가지고 다시 만나자.
-학생에서 사회인이 되는 환절기 봄에, K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