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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죽이지 않는 모든 역경은 널 더 강하게 만든다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앞으로 더 아름답게 피어나고 빛날 장미에게

안녕 장미야? 난 3학년이 된 너야. 네가 가장 좋아하는 꽃은 예전부터 변함없이 장미였으니까, 가명을 ‘장미’로 해서 서두를 장식해 보려 해. 마음에 들지?


예비 8번을 받고 추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초조해 하던 게 엊그제 같아. 합격 소식을 확인하고 온 가족이 기뻐했었던 것도. 새내기 카페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소개 글을 작성하고 저장을 누르던 그 순간과, 새맞 선배님들의 댓글 알림이 뜰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읽어 내려가던 순간들은 내 뇌리에 각인된 것만 같아. 1차 신입생 환영회를 함께하던 상냥한 사람들, 열정이 가득하다 못해 타오르던 뜨거운 뒤풀이, 그 속에 오고 가던 따뜻한 마음과 수줍은 배려까지. 서강대학교에서의 시작은 내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해 줬었어.


장미 네가 가장 잘 알겠지만, 과학고등학교에서 보냈던 3년은 상상 이상이었잖아. 친구들끼리 ‘산골 구석에 가둬 놓고 공부만 시키니까 학생들이 미쳐 간다’고 했었던 우스갯소리가 진담 반 농담 반일 정도로, 모두가 매일같이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렸었지. 어느새 스스로의 이익만 추구하는 게 당연시됐었어. 몇몇 친구들은 다른 사람들을 헐뜯고 비난하며 입시에 대한 부담감을 적절치 못한 방법으로 해소하기도 했었지. 그 뒷담화의 대상이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안 건 - 그러니까 그 단톡방의 존재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 나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오고 갔음을 안 건 현장 체험 학습을 갔다가 학교로 돌아오던 날이었어. 방금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나와 장난을 치던 사람들이 내 뒤에서 그런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고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지. 학교로 돌아와서, 기숙사에 다시 들어간 날 밤, 친구의 품에 안겨서 울었어. 당시에는 모르는 척했지만 날 토닥이는 친구가 함께 흘리던 눈물이 내 머리랑 목에 뚝뚝 떨어졌던 게 아직도 생생해.


그 후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련의 사건들이 있었잖아. 장미 너는 네가 고통 받는 것보다도 네 소중한 사람들이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훨씬 더 속상했었지. 가장 친한 친구가 자기 연구 주제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나서 엉엉 울던 날, 장미 넌 생각했었어. 이렇게 어두운 세상이 있었구나 하고. 너무나도 선한 사람들은 자신의 몫을 뺏기고, 성적에 따른 무조건적인 차별이 만연하고, 소위 말하는 ‘최상위권’ 친구들의 모든 잘못은 쉬쉬되고 덮어지는 세상이 말이야. 그리고 다짐했었어. 시인 윤동주의 서시를 차용해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의롭게 살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겠다고. 그 생각을 매일같이 되새기다 보니 어느새 졸업이었어. 서강대학교의 일원이 되어 있었지.


장미 넌 지금껏 살아왔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하게 돼. 이곳엔 닮고 싶은 사람들이 참 많아. 고등학교 시절 널 버티게 해 준 몇몇 친구들처럼 말이야. 서강인들을 보다 보면, 버드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어. 버드나무 줄기처럼 굳건하고 당당하면서도, 봄바람에 나부끼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부드럽고 사려 깊은 사람들이거든. 그래서 늘 스스로를 반성하고 성찰하게 돼. 사실 처음에는 학생 수가 많고 규모가 큰 타 대학교들이 부럽기도 했었어. 뭔가 으리으리하고 삐까뻔쩍한, 그런 느낌이어서 멋있었거든. 그런데 내가 서강인으로서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느낀 건,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더욱 끈끈하다는 거야. 인원이 적다 보니 서로 서로를 더더욱 챙기고, 같은 학과뿐만 아니라 같은 학부 내에서의 교류도 굉장히 활발하고, 동문 분들은 ‘서강’이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쳐서 활약하고 계시더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서강을 사랑하게 되는 건, 흔히 말하는 일시적인 ‘학교 뽕’은 아닌 것 같아. 그래서 장미 네게 미리 말하고 싶어. 입학한 이후 너 역시 내가 걸어온 길을 걸으며 알게 되겠지만, 서강은 널 누구보다 열렬히 환영하고 네 빛나는 가치를 알아봐 줄 거야. 그러니까 너 역시 스스로의 가치를 갈고닦아서 서강을 빛낼 수 있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어. 장미 네가 사랑이 넘치는 서강인들과 함께 치열하면서도 행복한 대학 생활을 했으면 좋겠고. 또 신입생 때 네가 만나게 되는 많은 인연들이 지금까지도 너와 오래 오래 함께하고 있으니까 열린 마음을 가지길 바라!


이제 약간 어두운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된 것 같아. 장미 너는 2학년 겨울방학 때 굉장히 큰, 인생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돼. 그때 아빠가 쓰러지시거든. 건강 검진을 받으시게 하라는 말도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아. CT나 피 검사, 심장 초음파로 쉽게 검출되는 질환은 아니기 때문이야. 그래서 사실 아직까지도 유추에 불과하긴 하지만, 뇌 쪽 질환이라는 건 거의 확실시되고 있어. 그러니까 장미 네게 꼭 부탁하고 싶은 건 아빠가 매사에 신경을 덜 쓰고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도록, 네 몫을 잘 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아빠가 쓰러지는 날에는 아빠를 눕힌 후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아빠가 토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 쓰러지셨을 때 구토를 제대로 못 하셔서 토사물이 목에 걸리게 되고, 그래서 구급차를 타고 가는 동안 뇌에 산소 공급이 잘 안 되시니까 앞에서 말한 대로 장미 네가 응급처치를 잘 해줘야 해. 알겠지?


겁을 주려는 건 아니지만, 꽤 힘든 나날들일 거야. 정시 면접을 앞둔 동생과 장미 너, 둘만 집에 있게 되면서 거의 모든 집안일은 네가 담당하게 돼. 엄마는 아빠 간호 때문에 계속 대학병원에 계시거든. 아빠가 무사히 퇴원한 뒤에도 혹시 다시 쓰러지시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덜컹하고, 밤에는 불안함에 잠을 못 이루기도 해. 그날에 느꼈었던 감정들은 지금도 생생하거든. 가족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눈앞에서 아빠가 의식을 잃어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슬픔까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야. 나를 포함한 세상 그 누구라도, 이런 기분을 느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야.


이런 불행한 이야기를 왜 하냐고? 사실 본론은 지금부터야. 혹시 장미 네가 어렸을 때, 매우 좋아했던 가수 ‘켈리 클락슨’의 노래 중에 <What Doesn't Kill You>라는 노래 기억해? 아마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를 죽이지 않는 모든 역경은 널 더 강하게 만든다는 그 가사가, 미래의 네게는 참 많이 와 닿을 거야. 그 암흑을 견디면서 너는 정말 많이 단단해지거든. 물론 원하지 않았던 일들의 연속이겠지만, 조금은 반강제로 굳세어지는 너겠지만, 훌쩍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내가 보장할게. 지금의 넌 건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알고 있어. 그래서 우리 가족은 매일 함께 운동하고 건강한 식단을 먹으며 생활하기 위해 노력해. 또 너는 가족들과 실없는 농담을 하고 같이 웃으면서 보내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를 알아. 그래서 그 가치 있는 순간들을 매일같이 되새겨. 지금의 나는, 아빠가 쓰러졌을 때 가족이 모두 집에 있었고, 처음 겪는 일임에도 최대한 빨리 대처할 수 있었음이, 빨리 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었음이 너무나도 큰 행운이라고 느껴. 아빠는 약도 꾸준히 먹고 있고, 최근엔 코로나19 때문에 주 3일 재택근무를 하게 되셨어. 다행히 아빠의 건강 상태를 나, 엄마, 동생이 계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장미 너도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아빠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셨음에 행복해.


지금의 나는 확실히 장미 너보다 많은 것을 알아.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이들을 만나고,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으며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되어 감을 느껴. 내 삶의 빛나는 순간들을 만끽하는 방법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그리고 너와 난 항상 넘어질 때마다, 심지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고 느꼈을 때에도 다시 일어났으니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그러니까 너도 너 자신을 믿어. 넌 생각보다 더 강한 사람이니까. 사실 꼭 뛰지 않아도 돼. 힘든 순간들엔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둘러봐. 예쁜 풍경을 감상하며 네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되새겨. 언제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가족들을 바라보고, 따뜻한 서강인들의 온기를 느껴봐. 넌 정말 가진 게 많은 사람이야. 그리고 네가 넘지 못할 산은 없고, 넌 반드시 할 수 있어. 마지막으로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은 이 편지의 서두를 열며 했던 말인데, 기억나? 장미 너는 앞으로 누구보다 더 아름답게 피어나고 빛날 존재야. 그러니까 불확실한 미래가 가시밭길일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힘차게 뛰어들길 바랄게. 사랑해 장미야!

2022년 2월 12일,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고 응원하는 장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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