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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의 색깔로 물들기를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대영에게,


다른 친구들보다 일 년 더 공부한 스물 한 살의 너는, 수능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 혼자 참아낸 시간이 길었던 만큼 하고 싶은 게 누구보다 많았지. 호기심 많고, 뭐든 다양하게 해보는 걸 좋아하는 너는, 네가 생각한 대부분의 것들을 하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어. 1학년에 처음 입학해 MT도 가고, 선배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새로운 문이 열렸지. 동아리에서도 활동해보고, 축제 때 같이 춤도 춰보고 말이야. 그렇게 학교 활동을 하다가 대외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네가 예전부터 하고 싶어 하던 교육 활동을 드디어 하게 됐어. 그렇게 바쁘게 살던 중에, 너무나도 열심히 살았던 너는 번 아웃이 왔어. 누구보다 바쁘게 매일 매일을 보내던 너는 점점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너 자신을 보고 회의감이 들었지. 돈 버는 것에 재미를 붙여서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일하던 너에게 ‘무얼 위해 이렇게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왔어.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지금의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 그 때 그걸 경험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함께의 행복을 알지 못하고, 현재의 행복을 챙기지 못하는, 조금은 슬픈 사람이 되었을 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번 아웃이 와도 당황하지 말고 잠시 멈춰보라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뛰어가다 보면 빨리 도착할 수는 있지만 지금 네 옆에 피어 있는 꽃들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거든. 하지만 그 시기의 그 꽃들은 다시 피어나지 않아. 스물 한 살의 네가 스물 한 살에 핀 꽃을 보면서 걸어 나갔으면 좋겠어. 스물 두 살에는 또 스물 두 살의 풍경을 보고.


네가 그렇게 빠르게 뛰어가는 이유는 아마도, 불안해서 일거야. 무언가 조급할테고. 지금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일 거고,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해보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어.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너를 느리게 가라고 붙잡을 수는 없을 거고, 붙잡는다 해도 네가 느리게 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알아.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건네 주고 싶은 말은 그냥, 너는 이미 충분히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는 거야. 무언가 특별하지 않아도, 멋져 보이는 걸 하지 않아도 이미 특별하고 멋진 존재라는 거야. 나도 이걸 알게 된 건 오래되지 않았어. 사실 지금도 느리기보단 열심히 살고 있고. 하지만 예전과 느낌은 달라. 예전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것, 누군가의 말에 쫓겨서 열심히 뛰어갔다면 지금은 내가 고삐를 잡고 달릴 줄도, 멈출 줄도 알게 되었어. 그 중심에는 ‘나는 충분히 특별한 존재’라는 말이 있고.


이렇게 살 수 있게 된 데에는 정말 많은 경험들과 사람들의 영향이 있었어. 철학, 심리학, 교육문화학이라는, 내가 하고 싶은 학문을 배우며 함께 토론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들. 몇 분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어. 내가 방황할 때 붙잡아주셨던 교수님, 여러 수업에서 만났던 선배, 동기, 후배님들. 다양한 곳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이 지금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대외 활동을 하며 만났던 수백 명의 아이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던 내 꿈은 지금도 여전히 나와 함께야.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피처링도 해보고, 무대에도 서 보고, 취미로 꽃을 배워서 플리마켓에서 팔아도 봤지.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간 것도 큰 전환점이었어. 한창 바쁘게 살았던 너와 대비되는 스웨덴이라는 곳에서 잠깐 머무르게 되었는데, 교육과 복지가 굉장히 잘 갖춰져 있고 여유를 가지는 문화 속에서 지내며 다르게 살 수 있음을 배웠어.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소중한 사람을 만나 그에게서 현재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나는 예전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있어.


물론 지금도 완벽하지는 않아.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릴 때도 있고,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고민될 때도 있어. 이렇게 남들과는 다른 길을 가도 되는 건가, 여유롭게 걸어 나가도 되는 걸까.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양한 고민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내 마음 속의 이야기를 더 귀담아듣다 보면 조금씩 해결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빠르게 꽃들을 지나치지만 더 멀리 가는 사람도 있을 테고, 천천히 여유롭게 꽃들을 구경하며 걸어가는 사람도 있을 거야. 각자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야.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삶이 나에게도 꼭 적용될 거라는 보장은 없어. 지금 당장은 남들이 많이 가는 길이 빛나보일지 모르지만, 네가 원하는 길을 걷다 보면 그 길은 언제나 이어져 있을 거고, 그 길 끝엔 빛나는 네 꿈이 있을거야.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거니까, 그래서 나는 네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남들의 질문보다는 내 질문에 대해 답해가면서, 그 질문을 직접 경험해가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게 너의 행복이라면 말이야.


그러니까, 그저 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길 바라. 언제까지나. 나는 응원할게. 네가 너만의 색깔로 물들기를.


대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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