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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한 모든 선택들은 그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거든

(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최선의 나를 찾다가 지친 너에게.

 

음.. 나한테 편지를 쓰려니까 되게 막막하다. 그렇지만 모든 편지가 그렇듯 쓰다 보면 글자 수가 아슬아슬해지겠지? 나는 졸업을 앞둔 미래의 너야.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전공을 잘못 고른 것 같다고 후회하던 일이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네.. 대학교에 입학했던 4월 말이면 엄청 불안해하고, 주변 이야기에 흔들리고 있었을 거야. 가족들 분위기도 험악해서 착한 막내 역할 하겠다고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었을 텐데 괜찮아? 아니 신입생이었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괜찮냐는 질문이 아니라 "그래도 괜찮아"라는 위로였던 것 같다. 그래, 결론만 이야기하면 그래도 괜찮다고 이야기하고 싶어. 네가 그렇게 회피하던 가족 문제도 지금은 거의 해결했고,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던 전공 문제도 다 해결됐거든.

 

물론 그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어. 특히 전공 문제는 ㅎㅎ... 왜 1전공을 선택한 건지 모르겠다고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복수 전공에 추가학기까지 했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1전공으로 대학원까지 가는 거 알아? 물론 과거의 나였으면 이 말을 듣고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방황했던 시간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한 모든 선택들은 그 상황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거든. 1년 뒤에 상담에서 듣게 될 말일 텐데, 사람의 부적응적인 행동은 한때 적응적인 행동이었을 거래. 네가 전공을 잘못 잡았다고 후회한 시간도, 복수 전공을 하면서 헛되게 보낸 것처럼 보이는 시간도 전부 내가 나로서 존재하기 위한 행동이었던 거지. 1학년 때의 냉소적이던 나였으면 시간 낭비해 놓고 보기 좋게 포장하지 말라고 화를 냈을까?

 

그래.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솔직히 지금도 가끔 후회하긴 해.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내가 휴학을 하지 않았다면, 복수 전공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수많은 '최선으로 보이는' 선택지를 가정할 때도 있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너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최선으로만 흘러가지 않고, 중요한 순간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따라갈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고등학교 때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어? 지금 내가 한 선택들이 최선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상당히 만족하고 있어. 휴학 기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던 내가 처음으로 뒤를 돌아볼 수 있었거든. 내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지, 배우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어.


솔직히 너도 알고 있지? 그동안 너는 부모님이 정해주신 틀 안에서 그나마 네가 하고 싶은 선택지를 골랐잖아. 그런데 방황하는 시간 동안 너는 처음으로 네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당당하게 외쳤다? 내가 하고 싶은 걸 직접 부모님한테 말하니까 그제야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 같더라. 그 뒤로도 마음껏 방황했어. 하고 싶다고 외쳤던 전공으로 취직하겠다고 해놓고, 지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본 전공으로 대학원을 가겠다고 하고 있거든. 네 기준으로는 직선으로 가면 됐던 일을 빙 둘러서 가고 있으니까 한심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나는 이 시간 덕분에 지금의 나로 존재하고 있어. 내가 방황한 시간만큼 넓어진 나의 땅을 마음껏 만끽하면서 말이야.

 

1학년 4월 30일쯤이면... '시험을 망쳤어. 이대로라면 성적이 잘 안 나올 테니까 그냥 자체 드랍해야겠다.' 딱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텐데... 나는 네가 최선의 선택을 좇기보다는 최선의 노력을 했으면 좋겠어. 버린 시간을 후회하기보다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아마도 지금의 나는 네가 상상했던 최선의 모습은 아닐 거야.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내가 너에게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네가 상상했던 최선의 모습보다 지금의 내가 훨씬 더 행복해. 남들이 말하는 완벽이 너의 최선이 될 필요는 없어. 그러니까.. 마음껏 방황하고, 뒷걸음질도 좀 쳐봐!

 

지난날을 돌아보며, 졸업을 앞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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