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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에 연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2021년 1월 22일이었어. 정시 합격자 발표일을 기다리며 보내던 날들 중 하루.

엄마와 장을 보고 돌아왔는데 왠지 그날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지. 나 혼자 조용히 방문을 닫고 들어가 눈앞에 펼쳐진 '합격' 그 가슴 벅찬 단어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멈춘 듯했어. 참았던 숨을 내쉬면서 비명을 지르자, 놀란 엄마와 동생이 뛰어왔다가 나를 부둥켜안고 울던 그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삼수 끝에 처음으로 달게 된 '대학생' 타이틀. 감격스러웠어, 믿기지 않았고. '교수님, 수강신청, 전공, 개강' 등 대학생들의 특권처럼 느껴지던 그 단어들은 이제 내 현실이 된 거야. 대학요람을 정독하며 시간표를 짜고, 잔뜩 긴장한 채로 수강신청을 마치고 새환회에 참석하다 보니 시간은 휘리릭 지나가 어느새 개강이더라. 그렇게 나는 '갑자기' 대학생이 되었어. 대학교는 이전의 학창시절과 비슷할 것 같으면서도 모든 면에서 달라.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어찌저찌 금방 적응은 하겠지만, 멋진 대학생으로 환골탈태하고 싶었던 나는 마음이 바빴지. 어린이날에도 학교 가고 싶다던 초등학교 1학년의 내 모습처럼. 설레면서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꼭 그때와 다를 바가 없었고. 비록 줌 수업이었지만 난생 처음 마주한 '교수님'의 존재와, 내 또래이지만 나보다 훨씬 성숙한 어른 같은 선배들과의 만남, 아직 낯선 용어들과,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내 시간표 등... 하루하루가 새로움의 연속이었어. 대중 매체로 접하고 상상 속에서 부풀려왔던 그 대학생활을 드디어 시작한다는 생각에 처음엔 마냥 들뜨기만 했었던 것 같아.

그런데 대학생활에 연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뭐든지 야무지게 척척 해내며 앞서가고 싶었던 나는, 학교생활을 뒤쫓아가기 바빴고, 학기 초에는 낯을 가려서 동기들과도 비교적 늦게서야 친해지는 바람에 속으로는 은근히 불안한 마음도 있었어. 그렇게 이런저런 고민·걱정을 안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와 과제를 해치우다시피 했더니 1학기가 끝나있더라. 나의 방황은 길고 지루했던 여름방학을 지나 2학기 개강 이후까지 계속되었어. 기분이 오락가락하고 생각도 많아지던 시기. 수험생 시절에는 대학만 가면 끝인 줄 알았지. 그게 인생의 목표였고. 그런데 그렇게 오고 싶었던 대학에 왔는데 목표는 사라졌지, 이제 앞으로의 내 인생은 내가 대학생활을 어떻게 알차게 보내느냐에 달렸지, 마음은 바쁜데 내가 가야 할 길은 보이지 않지... 정해진 로드맵도 없이 뿌연 안개 속을 더듬으며 나아가고 있지만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올바른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도 모르는 상황. 대학에 와보니 똑똑한 사람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나도 한때는 그들 중 하나였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로지 수능을 위한 공부만 했던 지난 3년 간의 세월이 나를 바보로 만들어버린 것 같아. 동아리며 대회며 사소한 발표 하나하나까지 열심히 하던 과거의 내 모습은 어디 가고, 나약한 모습만 덩그러니 남게 됐을까. 자신이 없어졌어,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게. 운전면허든, 컴활이든, 공모전이든, 동아리든... 공부며 대외활동이며 뭐든지 척척 해내는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자괴감, 일반고 출신 '패션 중문과' 학생의 숙명인 '중국어 벼락치기'에서 오는 스트레스, 그리고 미래의 진로 고민까지. 감정 소모를 많이 했더니만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버렸어. 나 스스로도 번아웃이 왔다고 느꼈으니까. 원래 타인에게 의지하는 성격도 아닌 지라 혼자 주절주절 블로그에 푸념했었는데, 친한 동기가 이 글을 보고 기꺼이 내 버팀목이 되어주었어. 맑고 예쁜 날에 같이 산책하고 책 읽고 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


나는 내 기대치에 도달하기 위해 발버둥 치느라 지난 1년을 허비했다고 생각했었어. 다시 1학년 1학기 처음으로 돌아간다면 대학생활을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아쉽기도 했고. 하지만 돌이켜보니 서강에서의 나의 새내기 생활은 완벽하진 않았지만 최고로 행복했던 것 같아. 어느새 동기들과 친해져서는 교복 입고 알바탑 앞에서 사진도 찍고, 청광에 앉아서 별도 보고, 과제한다는 명목으로 PA관 라운지에 GN관 라운지에 다산관 라운지에 로욜라까지 여기저기 엉덩이도 붙여보고, 학식도 먹어보고. 내가 상상했던 대학생활의 로망이 서강에 다 있었던 거야. 나는 비록 멋진 대학생은 아니었지만 나름 낭만 새내기였구나 싶어. 통기타 연주하는 신해철 선배님의 낭만이 어쩌면 내 안에 숨 쉬고 있을 수도?


어디선가 이런 글을 읽었어. 길을 잃은 사람은 대체로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래. 가야 할 길이 없다면 헤매지 않을 테니. 그러니 누리해, 서툴러도 괜찮아.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길인 거야. 방황도, 전진도, 모두 나의 길이라고. 과거의 내가 어떤 새내기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언제쯤 안개가 걷히게 될진 몰라도 일단 나는 지금의 나를 믿어볼게. 서강에서의 나의 남은 날들이 낭만과 열정과 성장으로 빈틈없이 채워질 수 있기를. 올해는 한층 더 성장할 내 모습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나 자신!

-새벽 감성을 담아, 정든내기 누리해가 새내기 누리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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