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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을 예쁜 나이, 예쁘게 보내자

  • jikim001
  • 9월 17일
  • 2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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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안녕! Fari야. 네가 직접 지은 네 이름으로 너를 부를래.


'신촌로터리 방면'이 새겨진 표지판이 어색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아직 서울이라는 덴 다른 행성처럼 느껴질 즈음이겠지? 너는 지하철도 혼자서는 처음 타보는 완전 어린 애, 나이는 성인이지만 아직 갈 길이 한참 남은 병아리야.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과 이미 남들보다 일 년이나 늦은 시작이라는 생각에 점철된 수험생활을 보내고 마침내 1등급으로 수놓인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땐, 그게 이제 그늘을 떠나 날아가라는 날개 같았어. 그러나 도리어 불운이 절대로 너를 놓아주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던 겨울이었지. 그때의 널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파. 어쩌다 보러 간 논술 시험을 너무 잘 쳐버린 탓에 서강대 합격 통지서를 받았어. 수능 성적에 비해 아쉬운 입시 결과였고 탓할 사람은 없었기에 스스로가 가장 미웠지? 서강대에 너무나도 다니기 싫은 마음에 입학 전 행사는 모조리 불참했는데도, 결국 집을 떠나 기숙사에 짐을 풀어야 했을 때 많이 속상했지.


그렇게 시작한 대학 생활은 좀 어때? 한동안 대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기숙사 화장실 변기에 앉아 벽에 무릎을 대고 많이 울었잖아. 엄마가 해주는 밥도 그렇게 그리워질 줄이야. 대학 시험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이제 막 세상에 돋아난 새 이파리처럼 흔들렸지. 그렇지만 지금 하나 말해주자면, 너는 대학 공부도 잘 해냈고 서울 생활에도 잘 적응해서 이제는 신촌오거리 한복판에 서서 다섯 갈래 길을 모두 돌아봐도 안 가본 길이 없단다.


너를 지금 가장 힘들게 할 일에 대해 말해볼까? 아마도 학벌에 대한 아쉬움이겠지. 사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금은 미련이 남아. 너를 위로하자고 거짓말할 수는 없는걸. 아무렇지 않다고 착각하며 살다가도 순간 마음이 덜컥 멈춰 서는 날들이 여전히 있어. 그렇지만 네가 지금 미워하는 자그마한 캠퍼스에 봄이 오면, 온갖 봄꽃이 만개해서 코끝에는 한 계절 내내 그 어떤 향수보다 진한 라일락 향이 맴돌 거야. 특히 좋아하게 될 로욜라 도서관 앞 겹벚꽃 송이들은 봄의 말미가 되어서야 고개를 내민단다. 그러면 나는 모든 순간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어.


스물세 살의 너는 학교 수업도 성실하게 듣고, 과외도 다니고 새로운 운동도 시작했지. 정말 들고 싶었던 동아리에도 들었고 꿈에 그리던 자취도 하고 있어. 그렇지만 가끔은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조바심이 들고, 오랜 친구들과는 조금씩 멀어지는 묘한 기분에다 공부는 해도 해도 쉽지가 않아서 한숨이 나올 때도 있어. 불안 많은 너는 언제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살아가겠지. 그렇지만, 네가 갖는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싶다면 뒤돌아보지 말고 오히려 그때마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어. 그러다 보면 아주 오랜 나무의 나이테처럼 그 고민도 너의 지나온 길이 되는 거야. 그리고 행복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며 좌절을 거듭했던 너에게 따끔하게 충고도 해주고 싶어. 네가 다가오는 행복을 뿌리치는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어? 너는 좋은 날 좋은 시를 받아 태어난 아이니까, 불운에 곁을 내주지 말고 이제는 스스로를 위해 행복을 찾아 날아가 봐. 나 이런 말 하니까 진짜 철든 것 같지? 못난 나도 서강의 자랑이라고 품어주는 둥지가 있어서, 모난 마음 테두리가 조금씩 깎이고 갈려 둥글게 변했나 봐.


치열했던 시간 끝에 얻은 성적표가 너의 날개는 아니야. 성공이라 이름 붙여진 가파른 길 위에서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살아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산 게 되는 건 더더욱 아니야. 네가 사랑하는 겹벚꽃이 매해 조금 늦게야 피어나듯, 너의 계절도 너만의 시간에 물들게 되기를 바란다. 정해진 길이 아닌 너만의 방향을 찾아가. 처음부터 날개는 너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려줄게.


너와 네 모든 날들도 열렬히 응원할게. 그리고 우리 엄마가 요즘 나한테 늘 하는 말을 지금 너에게도 해줄래.

돌아오지 않을 예쁜 나이 예쁘게 보내!

 

진심이 가득 담긴 편지야.

스물 셋 Fari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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