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순간들의 조각만 조금씩 조금씩 모아볼래
- jikim001
- 9월 17일
- 2분 분량

(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야?
너는 지금 뭐라고 답했을까?
언시한다고 작문 준비를 할 때,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순간”이 주제로 나온 적이 있었어.
한참을 고민했는데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더라.
아 물론, 반짝거리는 순간 너무 많지. 나이가 스물여섯인데 빛나는 순간이 없겠어?
근데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하니까, 또 특별한 게 없어 보이는거야.
나는 내가 빛나는 사람보다는 빛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어. 왜, 예쁘게 그려지는 별이나 달이 아닌 달무리같은 사람 말이야. 은은하게 그 옆에서 달을 환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존재.
다른 사람들이 나랑 있으면 색이 뚜렷해지는 기분을 느껴. 조은이한테는 통통 튀는 노란색이, 은호에게는 회색빛 도는 푸른색이,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가수에게도 파도처럼 일렁이는 하얀빛이 돌아.
그런데 내 색만 보이지 않더라고.
그래,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특별할 게 하나 없는 사람이었어. 못 하는 건 없었어. 학창시절 내내 계주에서 빠지지 않았고, 공부도 적당히 곧잘 해서 서울로 올라왔지. 기타랑 피아노도 남들 들을 만큼은 쳤고, 지금은 퇴화했어도 글쓰기로 상도 받은 사람이란 말이야. 그렇지만 모두 평균, 그놈의 평균, 딱 평균까지였어. 누구는 하나를 못해도 하나에 특출나서 그걸로 먹고 사는데, 나는 다 고만고만하게 해서 그런지 어느 곳에서도 내 빛은 달무리처럼 은은하게 머물다 사라졌지. 내가 하는 라디오도, 매주 매 회 디제이뿐만 아니라 다른 게스트와 사연들의 형형색색을 비춰줬어. 그 사람들은 환하게 빛이 났지만, 나에게서 빛이 났는지는 기억이 흐릿해.
그런데 1년 반 전, 기억나?
나는 그때 죽었어. 죽었다고 하기엔 죽지 않았지만, 거의 죽은 수준에 가까웠다고 봐. 동의하지? ‘내 세상이 무너졌어…’를 직접 겪었달까, 사랑하는 사람이 한순간에 우주의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의 공허함은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아무튼 그렇게 나는 모두에게서 빛을 껐어. 받지도, 주지도 않았던 것 같아. 생사의 갈림길에 서서 몇 번이나 고민했어. 갈까? 말까? 갈? 말? 정말 모순적이게도 그때 나는 내 빛을 봤던 것 같아. 너가 그랬지, 빛을 주는 사람은 이미 빛나고 있기 때문에 빛을 줄 수 있는 거라고, 그 다정한 빛을 너 스스로에게도 주라고.
내가 거의 관짝처럼 누워있을 때, 그 말을 실감했어. 나에게 빛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도착해서 내 앞에서 후기 읊듯 말했어. 얘 때문에 웃었다, 얘가 있어서 위로를 받았다, 얘 덕분에 나는 데뷔까지 한거다, 등등 .. 나는 그렇게 내가 빛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 같아.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고 한 말, 파상풍 걸릴 정도로 많이 본 활자같아. 나에게는 그 알이 조금 단단하더라.
아니, 찜질방 가서 계란 깰 때는 한 번 치면 껍질이 싸악 벗겨지잖아. 근데 알을 한 군데 깨도, 두 군데 깨도, 구멍이 생길 뿐 깨지지 않았었거든. 사실 그 한 번 깨는데에도 너무 힘들었는데 말이지.
그래서 그냥 깨진 껍질조각들로 내 알을 새롭게 만들어보기로 했어. 힘없이 죽지 않기로. 알록달록하고 괴짜같은 그런 알이 되겠지만, KTX 타고 가다 봐도 내 알이라는 걸, 나중에는 모두가 알아보겠지.
내 인생 가장 빛나는 순간, 나는 그렇게 그냥 공백으로 냈어. 하지만 지금도 다시 쓰라면은 공백으로 내야 할 것 같아. ‘지금’이라는 대답은 너무 진부하잖아?
어쩌면 오늘도, 어제도, 앞으로도 ‘가장’ 빛나는 순간은 없을지도 몰라. 빛나는 순간들의 조각만 조금씩 조금씩 모아볼래. 이걸 보는 너의 대답이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