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스무 살은 그냥 수많은 나이들로 이루어진 일생 중 하나일 뿐이니까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먼저 스무 살이 된 소감을 물어보고 싶어.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경험에 싱숭생숭한 기분도 느끼고, 감회도 새롭고 설렜을 거야. 그래도 너는 딱히 뭐라 특별한 기분이 들지는 않는다고 대답했겠지. 다른 걸 떠나서 무엇보다도 스무 살이라는 나이가 실감이 나질 않았을 테니까. 근데 너는 그런 초연한 대답을 하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굉장히 불안했지? 스무 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기인데. 가장 열심히 빛나고 싱그러워야 할 시기인데 나만 또 무심하고 나태하게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 이러다가 20대의 시작점부터 꼭 도태되어 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말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절대 그렇지 않아. 이런 말을 가족들에게도, 너를 믿어 주는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들었겠지만, 그리고 이런 위로가 귀에는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걸 알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니까 한 번 더 말해주고 싶어. 지나고 보니 스무 살은 그냥 수많은 나이들로 이루어진 일생 중 하나일 뿐이니까 너무 괘념치 말라는 말을 나는 스물 다섯이 된 지금에서야 절실하게 공감하게 됐거든. 그래서 비록 짧은 간극이지만 그동안 내가 느꼈던 것들, 새내기 시절 스무 살이었던 나를 반추하며 네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이 편지로 전해 주려고 해.


내가 지금 편지를 쓰고 있는 과거의 너는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새내기잖아. 아마 그 때 네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밴드부를 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일일 거야. 다른 사람이 들으면 사소한 걸로 왜 고민하겠냐고도 하겠지만, 학업이랑 병행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고 있었지.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주저하는 이유는 무대에 서는 공포 때문일 거야. 초등학교 때부터 책걸상 앞에서 하는 발표라도 손을 덜덜 떨던 나니까. 막상 밴드부에 들어가면 안 떨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는 커녕 전혀 모르겠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근데 그거 아니. 앞으로 너는 열 번이나 넘게 공연을 하게 되고 아주 오랫동안 그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미래의 너 스스로도 모르고 있다는 걸. 지금은 밴드부를 하겠다는 네 선택이 너무 욕심 부리는 것 같고 그래서 좀 포기해도 되지 않을까,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겠지. 그러다 결국 네 선택을 밀고 나갔을 때 뒤돌아 보면 틀린 길이지는 않을까 두려웠을 거야.


나는 그냥 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 틀렸다고 생각한 선택이 사실 그냥 좀 다른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는 걸 말해 주고 싶어. 물론 밴드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학점이 조금 더 올랐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2년 반이라는 짧다면 짧을 시간동안 너는 생각보다 많은 귀인과 친구들을, 그보다 더 많은 기회와 경험을 쌓을 거야. 그리고 나는 대동제에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완벽하게 공연을 해낼 수만 있다면 공부하는 시간은 좀 포기해도 괜찮았을 것 같아ㅎㅎ


그리고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는데…가끔은 정해진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미래의 내가 모든 걸 다 얘기해 줄 순 없겠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 너는 수많은 변수와 우연을 마주치게 될 거야. 그럴 때마다 너의 능력 부족이나 운 없음을 탓하지는 않았으면 해. 아까 내가 대동제에서 공연한 얘기 잠깐 했었잖아. 그거 사실 예정된 다른 무대가 취소 당하고 우울해 하던 와중에 다시 주어진 기회였거든. 그래서 오히려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로 훨씬 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공연을 하게 됐어. 대동제 날 무대를 설치할 때부터 악기를 들고 집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을 때까지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그때처럼 실감한 것도 처음이었던 것 같고…그 날 찍힌 공연 사진 아직도 내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이야ㅋㅋㅋ 아무튼 변화에 초조해 하기보다는 변화가 가져올 새로운 과정과 결과를 기대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살면서 그런 변화는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빠르게 일어나더라. 변화를 즐기고 변화에 맞춰서 나도 바꿔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더라고.


'새내기, 스무 살이 생각보다 아주 대단한 걸 이뤄야 하는 나이는 아니라지만 지나고 보니까 미숙하고 정말 어린 나이였다라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하게 돼.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을 나는 정말 싫어하는데(ㅎㅎ) 그 대신에 나는 아파도 청춘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의문을 갖고 있는 너에게 충분히 그렇게 불려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 이래도 내가 어른이 맞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는 네가 너무 괘념치 말고 방황했다가도 금방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 5년 전의 내가 짐을 싣기 보다는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


정말 수고했어, 유나야. 미래에서 만나기를.


5년 뒤의 내가 씀.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