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삶을 잘 모르고 어렵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더 잘해보려 내딛고 있어
- jikim001
- 2024년 8월 13일
- 2분 분량

(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안녕.
우연히 만난 좋은 기회로 너에게 편지를 쓰게 되었어.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7년 후의 너야. 언니라고 부를래? 아니다, 그냥 친구하자. 어차피 우리는 하나니까.
막상 편지를 쓰려니, 네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어. 나는 아주 기특하게도 20살 때부터의 과거 다이어리를 전부 보관하고 있어. 기왕이면 7년 전 오늘의 기록을 보는 게 의미 있겠지?
2017년 4월 30일, '과학사 레포트 완성'이라고 되어 있네. 그 밑에는 '토, 일 둘 다 3시 넘어서 잠.'라고 적혀 있네.
너 체력이 어마무시했구나? 난 3시가 뭐야, 자정만 되어도 잠이 솔솔 오는 걸. 삶이 그만큼 힘들어져서 그렇..다는 늙다리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지만 참았어. 왜냐하면 내가 기억하건대, 걱정거리라고는 도저히 없을 것만 같은 그 나이의 나도 하루하루를 조금은 힘들게 살았거든.
(편지를 쓰다 보니, 너를 '너'라고 불러야 할지, 아님 '나'라고 불러야 할지 오락가락한다. 그래도 이건 엄연히 독립적인 독자를 상정하고 쓰는 편지니까, '너'라고 할게.)
20살, 딱히 책임질 것도 없는데 대체 왜 힘들었을까. 아마 모든 게 처음이어서 그랬을 거야. 빡센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광활한 여유. 1~9교시가 꽉꽉 채워져 있는 스파르타식 시간표가 아니라, 하루에 서너 시간 정도만 수업을 들으면 남은 시간은 '공강'. 그 시간엔 그냥 좀 놀면 되는데, 노는 것 자체가 어색했다 보니 공강은 공허하더라.
주로 공강에는 도서관 가서 공부했어. '이렇게 삶이 루즈해도 될까? 이렇게 게을러도 될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 말이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삶은 놀라고 있는 건데 말이야! 더 재미있게, 잘 놀려고 돈도 벌고, 그러려고 공부도 하는 건데. (그래도 한편으로는 1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줘서 고마워. 취업에 큰 도움이 되었어!)
20살의 삶에서 공부 못지 않게 큰 비중을 차지한 건 바로 사람이었어. 사랑하는 친구들을 만났고, 누군가를 마음 아프게 좋아해 보기도 했지. 어떤 친구랑은 갑자기 멀어지기도 했고, 가족과도 거듭 부딪히면서 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도 했어. 너는 사람을 아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인데, 너의 진심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 적지 않게 상처 받았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
그래도 결론은 사람이고, 결론은 사랑이었어. 지금의 나도 너랑 별반 다르지 않거든. 20살인 네가 치열하게 사랑하고 아파해 준 덕분에 지금의 나는 더 사랑하고, 조금은 덜 아플 수 있게 되었어. 또 한 번 고마워.
7년 후가 상상이 되니?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떤 사람일지? 지금 나는 2년 차 직장인이야.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할 수 있을지, 결혼은 언제 할 것인지, 돈은 어떻게 모을지, 무엇으로 내 시간을 채울 것인지, 사람들을 어떻게 더 사랑할 것인지... 요즘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살아. 일이니 결혼이니 돈이니, 너에게는 참 멀고 막연한 주제일 것 같아. 그렇지만 20살 그때 하던 고민들과 본질은 같아. 여전히 삶을 잘 모르고 어렵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더 잘해보려 내딛는 서툰 발걸음. 너가 걸었던 그 걸음을 지금의 나도 걷고 있어.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마치 새내기의 심정으로 하루하루 배우며 지내고 있어. 7년 후, 70년 후의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이렇게 평생 배우고 발전하는 것이 삶인가 봐.
기왕 편지 쓰는 거, 7년 선배로서 그래도 스포 하나만 해 줄게. 로또 번호 이런 거 아니고, 너의 미래에 대해서 말이야. 너 어릴 때부터 외교관이 되고 싶어했지. 스포하자면, 너는 3년 동안 아주 치열하고 힘들게 고시 공부를 할 거고, 불합격할 거야. 그러고 나서 새로운 꿈을 찾을 거고 좋은 회사에 들어갈 거야. 어차피 떨어질 거 왜 시작해, 라고 생각하지 말고, 더 힘껏 최선을 다해 공부해줘. 너무 좌절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으렴. 그러다 보면 금세 나를 만날 거야.
내일은 5월 1일이네. 근로자의 날이라서 난 회사 쉬는데, 다이어리 보니 너는 수업 듣는다고 되어 있네. 친구도 좀 만나고, 하늘도 보고, 즐겁고 재미나게 지내.
곧 만나, 안녕.
2024.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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