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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그동안 바래 마지 않았던 대학에 갔는데 행복하지 않을까?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신입생 시절의 정영에게


20살의 너는 그동안 너를 답답하게 했던 여러 제약에서 풀려나 단지 대학을 들어갔다는 이유로 자유를 손에 쥐어지게 되고 혼란스러워 했던 걸로 기억해. 고작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너는 대학을 진학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꿈 꿀 시간도 없고 공부 외에는 다른 것은 금지되던 고3의 신분이었는데 단지 대학에 합격하고 20살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공부를 안 하고 술을 마시며 고주망태가 되도록 놀아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고 즐기라고 하니, 이게 뭔가 싶겠지. 하지만 이런 혼란도 잠시, 너는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에 가슴이 뛰고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신나서 이리저리 쏘아 다니며 처음 맛본 성인의 자유를 즐겨했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공부했던 불과 몇 개월 전의 과거는 어제 꾼 꿈처럼 아득하게 느껴지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노는 현재는 드디어 긴 잠에서 깨어나 살아난 것 마냥 너무나 선명했어. ‘아, 이래서 대학을 가라고 하는 구나!’ 너는 네가 고등학교 시절 내내 정말 듣기 싫어했던 말 ‘일단 대학을 가’라는 선생님과 부모님의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


하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알 수 없는 허무한 기분에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나날이 점점 많아져. 사회에서,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대학생활은 대부분 동기들과 술 마시기, 미팅하기, mt 가기 같은 것들이지. 이런 것들을 너는 하나둘씩 해보고 그 안에서 재미도 느껴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기분이었어. 이미 시도해본 것들은 점차 시시해지고 그동안 네게 무한한 생기를 불어 넣어주었던 대학생의 자유는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신선함을 곧 잃어버렸지. 이런 게 계속 반복되는 게 대학생활인 걸까, 생각보다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딘가 방향을 잃은 듯한 기분이었어. 남들은 다들 즐거워보이고 아무 문제도 없는 것 같은데 너는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배가 되어 어디 갈지도 모르고 헤매는 것 같았지. 대학 수업 듣고,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연애를 하는 등 네가 아는 선에서의 즐거운 대학생활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데 왜 나는 즐겁지 않을까? 너는 행복을 가장하고 너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위화감 속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시간을 마냥 흘려보내.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27살의 나는 20살의 네가 했던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이 편지를 쓴 이유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서야. 20살 너의 마음 속에 있었던 작은 의문, 네게 계속 위화감을 주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했던 그 질문 ‘왜 나는 그동안 바래 마지 않았던 대학에 갔는데 행복하지 않을까?’ 이 질문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지만 깊이 생각해오지 않고 그동안 넘겨버렸지. 어쩌면 남들도 사실 행복하지 않고, ‘대학 생활 별 거 아니니까‘라는 생각에 너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지 않았어. 하지만 지금 대답을 아는 나는 20살의 너에게 이 대답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지금 편지를 써.


나는 그 때의 너를 한 마디로 나침반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다고 말하고 싶어. 20살 이전의 너의 나침반은 대학 진학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지. 너의 의지와 상관 없이 네 나침반은 대학 진학으로 맞추어져 있었고, 부모님의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해진 너는 저항하지 않고 따랐지. 네 의지 없이 나침반을 따른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네가 아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고 사실 한 번 나침반을 설정하고 나니 아무 생각 없이 따르는 게 더 마음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하지만 대학을 간 이후 네 나침반은 리셋이 되었고, 처음으로 네게 나침반의 방향을 정할 자유가 주어졌어. 네가 처음 대학을 들어왔을 때 느꼈던 자유를 너는 마음껏 놀고, 공부하지 않을 자유로 해석했지만 실은 너에게 주어졌던 자유는 네 나침반을 정할 자유, 즉 네 인생의 목표를 정할 자유였어. 물론 그 자유를 잘못 해석한 너를 이해해. 그전까지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네게 그런 자유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20살의 너는 그 자유를 외면한 채 괜한 세월만 보낸단다. 너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대학 생활을 보내지만 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 지에 대한 성찰 없이 공허함과 함께 충족되지 않는 찝찝한 기분을 계속해서 느껴. 이러한 상태는 20살의 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25살 너까지 아주 긴 시간동안 계속 돼. 지금의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지에 대한 구체적 성찰 없이 사는 것은 결국 공허한 나날의 연속이라는 것을. 네 나침반의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인생을 설계할 자유를 유기한 채 살아가는 것은 너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는 행동이랑 똑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이 자유를 온전히 만끽하고 그 자유에 대한 책임도 충분히 질 때 너는 20살 때 네가 느꼈던 위화감을 떨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거야. 이 대답이 너한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


이 글을 읽고 있을 20살의 너에게, 27살의 정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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