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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돌아가고 천천히 간다고 생각될 수 있는 그 시간이 오히려 더 빠르게 가는 것일 수도 있거든

  • jikim001
  • 2024년 8월 13일
  • 2분 분량

(사진 출처: 유홍현 동문)


20살 서강대학교 10학번 신입생 준영아 안녕~

나는 너의 14년 후 미래 준영이야. 반갑다. 지금 아마 반수를 준비 중에 있을 것 같은데, 후회 없도록 열심히 하렴.

다만 있잖아, 서강대학교도 너를 성장시키기에 충분한 곳이니 혹여나 반수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아쉬워하지 말아. 아마 서강대학교에서 값진 경험들을 마주할 시간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2학년을 마친 후, 입대하기 전 너는 서강대 이냐시오 센터에서 진행하는 ‘캄보디아 체험단’이라는 활동을 하게 될 거야. 13명의 또래 친구들과 수사님 한 분과 한 달 동안 같이 가게 되는 봉사 활동 프로그램인데, 그때의 경험이 이후 너의 삶에 큰 영향을 주게 돼. 그 전까지 너는 봉사를 상대적으로 너보다 약자인 사람들에게 베푸는 도움으로 생각했다면, 캄보디아에서 네가 봉사를 하러 간 보육원의 아이들과 장애인 학교 학생들의 더위에 지쳐 축 처져있는 너에게 환하게 웃어주며, 맛있는 과일을 가져다주는 모습들에서 힘을 얻게 돼. 그 경험 속에서 배운 ‘상생’이라는 가치가 이후 ‘T-UM’이라는 사회 공헌 소상공인 컨설팅 동아리에서 활동하게끔 하고 또 졸업 후에는 ‘중소기업중앙회’라는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 단체에서 일하게 하거든.

     

그렇지만 준영아,

꼭 인생이 흔들림 없이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탄하게만 흘러가는 건 아닌 거 같아. 졸업하고 입사할 때는 그렇게 자부심을 느꼈던 직장에서 너는 보수적이고 수직적인 상하 관계에서 오는 힘듦으로 인해 5년 반을 다녔던 그 직장을 관두게 돼. 그리고 학부 시절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전문직을 꿈꾸며 30이 넘은 나이에 수험 생활을 시작하게 되거든. 아마 많이 힘들 거야.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결혼하고, 애기 낳고,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너는 졸업한 지 7년이 지나 다시 학교 열람실에 나가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혼자서 묵묵히 공부해야 하거든. 사람들 만나길 좋아하는 네가 하루 종일 대화할 친구도 없이 혼자 하는 그 공부가 많이 힘든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거 같기도 해. 그렇지만 네가 직장 생활을 통해 느낀 그것, 결국 사람은 전문성 있는 일을 함으로써 다른 누군가로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는 그 확신으로 이 시기를 잘 이겨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말아.

     

근데 그런 생각은 들어. 네가 27살에 졸업하며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다른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받았었지만, 7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너를 부러워했던 그 친구들을 보며 오히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 네가 부러워하거든.

그런 걸 보면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이 정말 맞는 거 같아. 그러니 신입생인 너에게 내가 단 하나만 진심 어리게 말해준다면, “대학 다니는 동안 여러 가지 스펙을 쌓아서 졸업할 때 바로 취업해야 된다는 조바심을 가지기 보다는 대학생일 때 네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네가 진짜 졸업 이후 너의 인생을 온전히 바칠만한 일은 무엇인지, 늘 고민해 보길 바라.”

너는 휴학도 한번 안 하고 졸업했는데,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나 아니면 네가 배워 보고 싶은 것이나 아니면 그냥 아무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든가 부디 꼭 그렇게 한 학기 만이라도 시간을 보내면서 너라는 사람은 누구이고, 너는 무엇을 좋아하며, 사회에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 사람인지 꼭 한번 진지하게 너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길 바랄게. 그렇게 조금은 돌아가고 천천히 간다고 생각될 수 있는 그 시간이, 오히려 더 빠르게 가는 것일 수도 있거든. 어차피 빨리 졸업해서 취업해도 만약 그 직장이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직장이어서 가는 직장이라면 얼마 되지 않아 그 직장을 관두게 될 수도 있고, 그러면 다시 또 새로운 너의 삶을 찾아 나가야 되는 시간이 학부 시절에 그러한 시간을 가지는 것보다 더 고독한 시간일 수가 있거든.

     

늘 네가 남들이 좋다고 하는 일보다는, 너 자신의 마음이 가는 그런 일들을 찾고, 해나가는 준영이가 되길 바라고 응원할게. 파이팅이야!

     

2024년 4월 23일,

 14년 후의 준영이가 진정으로 20살의 준영이를 생각하며 쓰는 마음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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