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현재의 나와 비교할 수 있는 건 과거의 나뿐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안녕? 역시 편지는 이렇게 시작해야 맞는 거겠지. 그동안 잘 지냈는지 모르겠다. 주위에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혼자 책상 앞에 앉을 시간이 많아진 지금에서야 너에게 연락할 정신이 든 것 같아. 그때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들, 지나가는 사람들, 던져지는 말 속에서 홀로 남겨졌고 그 틈 사이에 모난 보도블럭처럼 존재하려 했던 모습이 이제야 보이네. 처음부터 따스하게 우리를 맞아줬던 곳인데 나는 마음을 열기가 왜 이리 어려웠을까? 서강에 오기 전에는 다른 무리에 속해 세상의 무례함과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거리감에 감각을 잃어갔던 것 같아. 하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선배들이 진실된 정중함과 친철함을 가지고 신입생을 마주하는 걸 봤을 때 여기가 내가 평생 마음에 묻을 장소라는 것을 알았어. 어디는 수시가 붙자마자 술부터 마시며 친해진다지만 나는 인권교육부터 시작해 천천히 다가오는 서강의 속도가 마음에 들었거든. 나의 예민함이 다른 누군가의 불편함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곳. 그렇기에 더 잘하고 싶었나봐. 이전 대학에서 이미 경험을 한 부분들이 있어서 굳이 용기내 새로운 무리에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다가오는 친구들을 막지 않았지만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못했고 스스로 먼저 다가가기가 너무나 망설여졌어. 나도 잘해보고 싶어서, 아 그때 같이 벚꽃구경 가고 싶었는데. 청년광장에서 옐로우피자 시켜먹는다 했을 때 사실 베이컨 체다치즈 피자 먹어보고 싶었어. 우리는 뭐가 그렇게 망설여졌던거야?


그때 친구들과 선배들은 항상 모두에게 집에서 학교까지 얼마냐 걸리냐 라는 말로 친목을 시작했지. 내가 “왕복 3시간이요”라고 대답하면 모두가 놀랐고 그때부터 대화가 시작되는거야. 갑자기 그 순간이 떠오르네. 그리고 그 질문이 그립다. 일학년 말에 내년에 후배가 온다는 걸 실감 하며 벌벌 떨었던 게 기억나. ‘내가 잘도 선배라는 걸 할 수 있을까’ 라며 동기들에게 늘 횡설수설했고 준비도 열심히 했는데 코로나가 갑자기 우리의 모든 결심을 휩쓸어가버렸어.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모든게 너무나도 달라서 새삼 신기하고 여러가지 기억이 떠오르네.


그때 우리들은 처음부터 잘하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 지금 떠올린다면 절대 완벽하지 않았고 어떤 점은 어설펐지만 결코 못하지 않았지. 너무 신기하지 않아? 세상에 갓 몸을 끼운 우리들이 어떻게 그런 정열적인 확신을 가지고 눈앞에 놓인 과제들을 하나하나 해치웠는지. 나중에 모두가 모이게 된다면 그런 이야기들을 꺼내 볼 수 있겠지. 주말 밤을 세워 준비한 설치 미술 조별과제, 동아리 전시회 전 마지막 날 급하게 휘날기던 그림, 몽땅 들고 밖으로 치워버린 정하상관 의자 수백 개, 랩실에서 시켜먹은 제육볶음, 집단지성으로 해결한 파이썬, 교수님과 먹은 훠궈까지. 이런 사소하지만 이제는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을 말이야.


그래 요즘 4학년이 되고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들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새로 들어간 근로에서 모두들 나를 대선배 보듯이 보는게 정말 재미있어. 우리도 일학년 때 삼학년 선배도 어려워했으니 그 마음을 알아. 이제 학교 안에 있으면 23살이라는 나이는 무언가 이뤘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 나이로 느껴지는 것 같아. 새로운 도전이 망설여지고 주위와 나를 자꾸 비교하게 돼. 하지만 이제 다르게 생각하려 노력해. 현재의 나와 비교할 수 있는 건 과거의 나뿐 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우리가 새내기 때부터 걸어온 뒷발자국을 보면 촘촘하게 그리고 매 순간 최선의 장소에 발을 딛으려 한 흔적이 보여, 그래 우리 실망하지 말자.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들이 지났고 서강에서 내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어디를 가던 서강을 생각하고 사람들은 내게서 서강을 볼 거야.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어. 너무 망설이지 말라고. 사람을 만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 있게 너를 보여줘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 너를 괴롭히는 걱정들은 어느 순간 물거품이 되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거고, 너는 친구에게 왜 그때 같이 밥 먹자고 하지 않았는지 후회하게 될 거야.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 마음 가는대로 해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어. 여전히 고민중이지만 우리는 행복했다고 얘기하고 싶어. 흘러가는 시간에 겁먹을 필요 없고 그렇게 매 순간 신중히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리고 가진 게 없다고 누군가를 돕는 것에 항상 훗날을 기약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알려주고 싶어. 물론 지금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지만 마음과 마음은 연결된다는 걸 빨리 알았으면 해. 정말 마지막으로 그때 그 친구들에게 그 남자랑 헤어지라고 옆에서 조언 좀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의 새내기는 평생 꺼내볼 보석함으로 남겠지. 힘들 때, 그리울 때 언제든지 열어보고 마음을 다독이는 그런 작은 보석함. 오늘은 이만 뚜껑을 닫지만 곧 다시 찾아오겠지. 그때까지 한 조각이라도 사라지지 말고 모든 기억들이 남아있으면 해. 그럼 또 올게. 오늘 고마웠어!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