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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버티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기억을 담아, 후배님에게


안녕, 후배님.


<미래의 네가 보낸 편지>라는 편지 봉투 위 문구를 보고 깜짝 놀랐지?

어떤 녀석이 친 장난인가 싶겠지만 (놀라지 말고 들어!) 이 편지는 실제로 타임머신을 타고 너에게 날아왔어.


이곳은 2022년의 대한민국,

어느덧 어엿한 3학년 선배가 된 내가 너에게 편지를 부친다.

기억을 잔뜩 담아서 말이야.


시간이 된다면 잠깐 이리 와서, 2년 간의 내 기억들을 들어 보지 않을래?


그럼 포장해 온 기억을 차근차근 풀기 시작할게.

네가 잘 알고 있을 기억부터 시작할 거야.


아마도 너는 지금 매일 밤을 악몽으로 지새우고 있겠지?

그땐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무척이나 힘들 때였잖아.

살고 있던 집은 경매로 팔리고, 실의에 빠진 부모님은 매일을 술로 보내시고, 너는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을 거야. 내 주변엔 아무도 없고 오로지 나만이 나를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을 강박적으로 옭아매기도 할 거야.


기특한 우리 후배님, 그런데 홀로 버티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우릴 도와줄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단 사실을 잊지 마.


매일 밤 반복되는 악몽과

사업 실패 후 완전히 망가지신 부모님을 향한 애증,

그리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솟구치는 불안감은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더라.


그래서 나는 용기 내서 마음의 문을 열었어.

창피해서 친구들에게조차 말할 수 없던 감정들을 서강에 털어놓기로 한 거야. 우리 학교 학생상담소에서 학생들에게 심리 상담을 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얘기야.


일주일에 한 번씩 몇 달에 걸쳐 상담을 받았고,

그렇게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찾아왔어.


상담사님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고, 따뜻하게 위로 받으니 마음에 볕이 들더라.


매일 밤의 악몽이 끝났고,

부모님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됐고,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대신 내 감정을 올곧게 바라볼 수 있게 됐어.


볕이 든 마음엔 희망이라는 나무가 무럭무럭 자랐어.

힘든 상황을 견뎌낸 사람에게는 세상을 보는 눈이 새롭게 생기는 것 같아.

희망의 나뭇잎 사이로 본 세상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또 신기했어.

하고 싶은 일도 마구 생기고 알고 싶은 것도 엄청 많아졌어.

그래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해 보기로 결심했지.


교내외 공모전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대외 활동, 각종 특강과 세미나까지 상황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다 도전해 봤어.

매 순간 진심으로 임하다 보니까 좋은 결과가 오기도 하더라.

(언제 좋은 결과가 왔냐고? 그건 비밀. 먼저 알면 재미없잖아. 크크.)


좋은 결과를 얻은 건 기쁜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게 제일 큰 성과였어.

너도 매 순간 도전하며 너 자신을 알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길 바랄게.


참, 금전적 문제는 잘 해결됐냐고?

글쎄. 물론 갑자기 복권에 당첨된다든가 하는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생기지 않았어.


대신에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제일 잘하는 일이었던 학원 아르바이트와 과외부터 시작했어.

힘들 것 같다고 미리 걱정하지는 마.

수업을 들을 때마다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눈은 보석과도 바꿀 수 없거든.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장학금의 힘을 꼭 빌렸으면 해.

우리 학교는 교내 장학금이 무척 잘 돼 있는 편인 데다, 교외 장학금의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해.

학생생활지원팀에서 교내외 장학금 공고를 모아 서강대 홈페이지 장학 공지 탭에 매번 업로드를 해 주셔.

틈틈이 공지를 확인하면서 지원할 수 있는 장학금은 모두 다 지원했었어.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 숨통 트일 때가 오더라.


뭐?

고생길이 쭉 깔린 것 같아 힘이 쭉 빠진다고?


그래. 인정할게.

내가 말한 기억들이 좋은 일만 가득한, 그런 동화 같은 기억은 아니긴 했지.


그렇지만 나는 있지.

내가 경험한 작고 큰 실패들이 어떻게 성장의 연료가 되었는지 들려주고 싶었어.

그래서 네가 앞으로 어떤 역경이 와도 그 속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는 것.”

그게 내가, 아니 우리가 제일 잘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거든.


다 큰 어른인 것처럼 편지를 쓴 나도 사실 고민이 많아.

이제 겨우 대학 생활의 반절 즈음 온 것 뿐이잖아.


2022년의 나는, 진로를 확정하고 꿈에 더 가깝게 다가가고자 잠시 휴학을 했어.

열심히 공부하고 실력을 키워가면서 인턴 자리를 구하고 있는데 가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될 때도 있어.


이럴 땐 기억 속 너를 떠올리곤 해.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발견하고 장애물을 뛰어넘어 온 너를.


나는 오늘도 네가 준 희망이라는 선물을 잘 사용하고 있어.

이 희망을 연료 삼아 인생이라는 여행을 뜨겁게 달려 나가고 있을게.

힘든 시간을 돌파해 희망을 발견해낸 너에게 부끄럽지 않게 말이야.


사랑하고 고맙다.

이만 마칠게.


너에게 희망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받은 선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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