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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스러운 순간들이 결국 나를 차근차근 쌓아 올렸음을 알고


(사진 출처: 최근우 동문)

To. 小永

안녕,

이렇게 마주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부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서강대에서의 내 지난 2년은 꽤 다사다난했어. 경험이든, 감정이든, 생각이든. 여러모로 말이야!

스무 살, 그 자유와 방종의 무게가 어찌나 무겁던지. 뭘 하든 새롭고 즐거운 나이잖아. 걸맞지 않는 소비라든가, 훌쩍 떠나는 여행, 사람, 사랑, 무엇이 되었든. 범박하고 사소한 것들에 전부 새로움 가득했지. 그래서일까, 처음 보는 것들에 한눈팔려 중요한 것들을 놓치곤 했어. ‘적당히’ 따위의 말로 위안하며 열정을 잃고, 그러다 이전의 내 모습과 비교하며 자신감을 갉아먹기도 하고.

아쉬움을 떨치며 들어온 학교, 의미 없게 느껴지는 학업, 열정 없는 시시한 활동,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는 관계, 다음날이면 까먹을 술자리의 이야기들… 그런 것에 신물이 날 때 즈음 벗어나려 노력했어. 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꺼내고, 곁에 있어 줄 이들을 붙잡고, 막연하게만 생각해왔던 취미들을 하나둘 해보면서. 마구 부딪혀보면서! 그렇게 스물한 살이 됐다?

사실 나아가도 스물한 살, 무얼 하든 서투르고 어색한 나이였는데. 이상하게 스무 살을 보내고 나니 어른스러워져야만할 것 같았어.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정든내기, 선배, 언니, 등의 호칭에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려 애썼지. 새맞단장도 하고, 온갖 부장도 하고, 사실 처음 해보는 것도 능숙한 척 굴면서… 어떤 멋진 이미지와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야. 빳빳했던 새 옷감이 흐물흐물해지듯 자연스러운 태가 나기를 원했지. 그러니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어,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고.

어디에도 들어맞지 못하는 것 같아 이리저리 끼워 맞췄어. 흥미도 없는 것을 좋아하는 척 굴고,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질질 끌리는 바지 밑단을 잘라내면서… 있잖아, 아마 너는 지금 모든 게 어색한 스무 살의 초입이겠지. 혹 주변 이들에게 샘이 나지는 않아? 누군간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 옷을 입고, 누군간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누군간 대단한 취향을 지니고 있어. 모두 자신만의 확고함이 존재하는 것만 같은데, 나 혼자 적당히 어울리려하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하지. 난 그런 마음에 줄곧 타인의 시선만을 재다가 오도 가도 못 하고 갇혀버렸었어. 타인의 말들이 나를 쌓아 올렸고, 결국엔 뭐가 좋고 싫은지도 스스로 판단할 수 없게 되더라.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걸까, 내가 좋아하게 생긴 것을 내가 좋아하는 걸까. 그렇게 갖가지 가능성이 애정에 대한 확신을 좀먹곤 했어.

이렇게만 말하니까 네겐 조금 암울해 보이는 미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음, 사실 나도 추억을 사랑하지만 그런 슬픈 기억들마저 간직하고 싶지는 않았어. 지난 시간이 헛되었다는 강박에 시달려서 매일 훌쩍거리곤 했지. 약간 그런 기분이었어, 사과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갉아먹은 부분이 절반쯤을 넘었을 때가 되어서야 썩었다는 걸 안 거야. 그럼 이제 동강난 사체가 속에서 평생을 꿈틀대지는 않을까 무섭고, 이상한 가정과 후회들에 계속 시달릴 것 같아 두려운 거지. 지나가 버린 시간이 버거워 캑캑대다 울었는데, 그렇게 펑펑 울면서 속내를 토해내고 나니 생각보다 별게 아니더라.

비유가 어려울까? 넌 스스로 학과에 걸맞지 않는단 생각에 겉돌던 사람이니 이런 내 문장과 글에 익숙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문학의 즐거움에 함빡 빠지게 될 거야, 넌 생각도 감정도 풍부한 사람이니까! 매주 글을 쓰던 문장과 수사 수업 덕에, 시간을 내서 글을 쓰는 습관이 생기기도 할 걸.) 그러니까 난, 내가 누군가의 실수에 관대해지는 것처럼… 지나간 것들을 그렇게 여기기로 했어. 나에게 야박해지지 않기로 다짐하고, 후회스러운 순간들이 결국 나를 차근차근 쌓아 올렸음을 알고. 그 덕에 지금의 내가 되었음을 말이야. 그런 걸 받아들이고 나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등의 사유도 해보게 되더라. 그렇게 나라는 사람에 대해 탐구하다가, 문득 시도해보지도 않고 포기했던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그래서 지금은 서툴더라도, 또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일지라도 뭐든지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은 다 시도해보는 중이야. (믿어져? 난 지금 피어싱이 5개야!) 나에게 어울려서 좋아하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나에게 어울려지는 것이 좋잖아!

최고 중 최악을 고른 적도 있었지만, 최악 중 최선을 다했던 적도 있었다는 걸.

서툰 표현과 그렇게 그려왔던 나날들- 그런 모든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낸 거니까.

사랑스러운 추억부터 지우고 싶은 기억까지, 결국 내 모든 게 최선이었어.

이렇게 말하면 쉬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이런 끄덕임의 무게는 가볍지 않을지도 몰라.

받아들이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많이도 울었는지! (하하)

그러니 앞으로 서강대에서의 2년 동안, 스스로 포옥 끌어안아 줄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좋겠다.

돌고 돌아 결국 이 자리로 올 거야.

적당히 아프고, 적당히 성장하기를 바라.

앞으로 남은 나날들이 많으니까. 늘 그 너머에서 기다릴게!

From. 昭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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