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뭇 계획적인 사람이다. 일전에 계획했던 어떤 것이든 시작부터 완벽하게 지켜지지 않는다면 의지가 급격하게 사그러든다. 하루의 시작 또한 마찬가지다.
그날은 지긋지긋한 수험 생활을 혼자 해내며 유난히 지치는 하루었다. 이상적인 하루하루를 보내리라 나와 약속했던 반년 정도가 지나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익숙한 일상들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매일 똑같은 장소에서 수십번 봐왔던 문장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암기하려 애쓰며 지쳐가는 나의 하루에 새로운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도중 희망연구소의 홍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며 색다른 자극을 받을 수 있고, 이와 더불어 기부를 통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의 취지가 나에게 정말 의미있게 다가왔다. 이에 고민없이 7시 기상 습관 크루 모집 신청서를 작성했다.
행운의 7시 7분, 습관을 만들기 위해 내 자신과 약속한 기상시간이자 밤잠이 많은 내가 7시 10분까지 인증을 해야하는 프로그램의 규칙을 준수하면서도 무리 없이 꾸준하게 지켜나갈 수 있는 최대한의 수면시간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다. ‘5분만 더’라는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종종 하루의 시작을 망쳐버렸던 나는 인증을 하기 위해 물 한잔과 함께 화장실에서 카메라를 켰다. 인증을 하고 톡방을 보면 많은 크루원들이 이미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구태여 정리했던 이불 속으로 감히 다시 들어갈 수 없었다. 7시에 일어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다시 잠에 드는 것은 그보다 더 쉬운일이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을 하니 전혀 힘들지 않음을 느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나는 밤잠이 많은 사람 중 하나다. 하루를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은 이상과 쏟아지듯 몰려오는 피로와 함께 시작되는 수험 생활의 압박은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였고 부담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강박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다. 아침 일찍 열람실에 도착하여 고작 한 시간 남짓이지만 시야에 누구도 보이지 않는 한적한 열람실에서 책을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밤까지 붐비는 열람실에서 내가 넘기는 책장 소리와 끄적이는 볼펜 소리가 있는 그 넓은 공간이 하루 중 가장 집중이 잘되었다. 남들이 생각하기엔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 그 시간이 소중해져서 이젠 일찍 일어난 것에 대한 뿌듯함보다 적막함 속에서 문 너머로 들리는 학교 미화원 여사님들의 소리만 오롯이 들리는 그 공간과 시간이 꼭 필요해졌다. 7시 기상 프로젝트는 ’하기싫은 일을 해내는 것‘이라는 목적보다는 ’하고픈 일을 위해 필요한 것’의 수단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내 수험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어준 7시 7분 기상이 없어서는 안 될 것만 같다. 열람실 문을 열고 들어가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간 속에서 오늘 하루도 후회 없이 보내리라 마음으로 호들갑을 떨며 시작하는 하루가 너무나 당연해졌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기상한 지 꼬박 10주가 지났다. 인증 횟수는 두 번 모자라지만 인증을 하지 못한 것일 뿐이고 실제로 기상하여 집에서 나선 시간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프로젝트 활동이 끝남에따라 연구원님의 기부처 투표글을 보며 또 한 번 생각에 잠겼다. 내가 내 자신을 위해 노력했던 일들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프로젝트의 취지를 떠올리며, 의미 있는 일에 힘을 보탤 수 있었다는 뿌듯함과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작성했던 나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앞으로도 지난 10주처럼 기상할 자신이 있냐고 묻는다면, 조금은 망설여진다. 이제는 내적친밀감이 생겨버린 얼리버드들과 종종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연구원님이 없어진다면 매일 아침마다 또 다시 ‘5분만’을 되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10주동안 약속을 지킨 나와 그 속에서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기회가 존재했음은 확실하다. 이 경험들이 자산이 되어 앞으로의 나에게 크나큰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프로젝트를 기획한 희망연구소와 함께 달려온 크루원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후기를 마무리한다.
(다들 고생하셨고 감사했습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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