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원동기
수시반수를 결심했습니다. 대학에서 보낼수 있는 3, 4, 5, 6월은 저에게 시한부에게 내려진 여명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네달을 내 인생에서 가장 알차고, 돌아봤을때 “행복했었지” 라고 추억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생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3월 한달은 너무나도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동아리를 알아보고, 수업에 적응하고, 술자리에 나가 친구를 만들고. 그냥 남들이 하듯이, 그렇게 지내는게 열심히 사는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리고 3월 말쯤, 현타에 빠졌습니다. 만나는 어른들마다 “좋을때다~” 라고 하는데, 난 이 “좋은 순간”을 충분히 만끽하고 있나? 난 행복한가? 엥??이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입시가 끝나고 경험한 시간, 그리고 대학에서 보낸 한달이라는 시간을 되돌아보려했을땐, 이미 다 기억에서 지워지고 난 후였습니다. 심지어 떠오른 순간들은 창피했던 경험이나 힘들었던 경험, 혹은 흑역사의 순간들이였습니다. 가끔 심해져서 잠도 못잘 정도였으니, 심각했죠. 기억과 경험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그리 정신상태가 맑지는 않았던것 같아요.
어느날 힘겨운 일교시 수업이 끝나고 건물에서 나오는데, 포스터를 봤습니다. 이상태로는 안되겠다, 뭐라도 해봐야겠다 늘 생각만 하던 저는 바로 기회를 잡았습니다.
2. 어려움과 극복, 그리고 개인적 성장
모든 일이 그렇듯이, 처음엔 어려웠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오글거린다는 것이였습니다. 고마운 일이 있으면 그냥 고맙다라고 말하고 끝내면 되는데 뭘 새삼스레 일기까지 쓰나… 뭐 이런 생각도 있었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건 대부분 남자보다 여자가 많이해서 눈치가 보이기도 했어요. 그리고 일상을 공유하는게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정말 귀찮다는 것이였습니다. 끝까지쓰는걸 미루고 미루다 데드라인인 2시 바로 전, 혹은 늦게 제출한적도 몇번 있었습니다.
첫번째 문제는 시간으로 간단히 해결할수 있었습니다. 몇번 일기를 쓰다보니, 가끔 쓸 소재가 없기도 했고요, 오늘 일어난 일임에도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마치 점심에 뭐먹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듯이요. 그래서 고마운 일이 있으면 “일기에 써야겠다” 하고 꼭 기억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습관 덕에 일기쓰기는 한층 쉬워졌습니다. 시간이 지나고서는 적어도 소재가 부족해서 못쓰는 일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쯤부터, 그러니까 일기쓰기가 익숙해졌을 무렵, 저는 놀랐습니다. 일상에서는 생각보다 감사한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폰 하나로 좋아하는 노래를 들을수 있다는것, 재밌는 수업을 들을수 있다는것, 심지어는 어떤 일을 경험할수있다는 것조차 감사한 일임을 깨달을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블로그를 쓰는것이 재미있어졌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연구원분들 덕에 해결할수 있었습니다. 연구원분들께서는 응원메세지를 보내시곤 하는데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아 이런방법도 있네~” 하며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한창 문제가 심각해졌을때 안되겠다 싶어서 응원메세지를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때 보낸 응원메세지에 “루틴 만들기” 대한 내용을 찾을수 있었습니다. 요약하면, 자연스럽고 의식할 필요도 없는 일상속의 무언가를 했을때, 습관으로 만들고자하는 행동을 이어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씻기”를 그 행동으로 삼았습니다. 어찌됐든 하루의 마지막에는 꼭 씻어야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귀찮았습니다. 귀차니즘 최고봉에 오른 저는 씻기와 일기쓰기를 하나로 묶어버려서 씻는 일까지 미뤄버렸어요. 또 이건 안되겠다 싶어서 아예 새로운 강박을 만들었습니다. 그 강박은 “씻기 전까지는 침대 위에 절대로 눕지 않기” 였습니다. 저는 밖에 나갔다온 후에 씻지 않으면 어딘가에 앉아있어야만 했습니다. 너무 불편해서 아예 집에오면 바로 씻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귀찮은 씻기가 끝나고 침대에 누웠을때 행복은 배가 되었습니다. 나름의 소확행이 생긴거죠.
3. 성과와 결과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졌습니다.일기를 2개월 동안 매일썼다는 사실이 나름대로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기부까지 하니 기분도 좋았습니다.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같다. 그래도 좀 갓생을 사는것 같다” 하는 느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수 있게되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로 계속 “내가 이 장소에서 이런 일을 다시 접할 기회가 다시 오긴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무수한 마지막 순간들이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고 찝찝했습니다.
학교 친구를 만나는 것이 마지막일수도 있었고요,
햇살이 비치는 책상과 의자를 보는것이 마지막일수도 있었고요, 학교 도서관 이층에서 나는 묘한 향기를 맡거나, 쉬는시간에 엎드려 잔 쪽잠이 마지막일수도 있었습니다.
일기를 쓰면서도 이 생각에 대해 고민을 자주 하곤 했는데, 결론이 지어진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그 결론은 “나의 마지막 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고, 기억속이 묻혀있다 사라진다” 는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일기를 쓰는게 다행이라고 느꼈습니다. 마지막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유지해주기 때문입니다. 일기는 그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려 그때의 행복을 미미하게나마 체험시켜줬습니다. 지금은 심심할때마다 블로그에 쓴 일기를 쭉 봅니다. 힐링이 되기도하고, 재미를 느끼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사진까지 추가해 일기를 쓰니 더 새록새록 기억해낼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대해 거부감이 줄었습니다. 계속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사용하다보니 실제 대화에서도 말이 낯간지럽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남에게 쉽게, 그렇지만 진심을 다해 고맙다고 말할수 있게됐어요.
4. 향후 계획
일기를 계속 써보려고합니다. 일기를 쓰는것도 재밌지만, 제가 쓴 일기를 보는게 너무 재밌습니다. 꼭 고마운 일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써서 현재의 순간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습니다.
처음 시작은 단순한 프로젝트 참여였지만 제가 얻어간게 정말 많은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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