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때는 첫 중간고사를 치른지 얼마 안 된 날, 여전히 버거운 캠퍼스의 경사와 거리에 씨름 중이던 나는 갑작스러운 변덕으로 중앙도서관에 방문했다. 책을 읽는 것은 나름 좋아했기에 언젠가 가보고야 마리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었으나 마치 중에게 시련을 안기는 듯한 높디 높은 돌계단에 좌절하기를 수차례, 끔찍했던 중간고사가 끝났다는 해방감이 느껴지고서야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가방에는 무거운 교재를 지고 돌계단을 오르자 놀랍게도 이번에는 내부의 계단을 올라야했다. 나는 모든 층이 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려 일일이 살펴봐야만 했기 때문이다. ‘공강 시간에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느덧 버킷리스트까지 올라간 책읽기를 위해 기어코 전층을 뒤진 나는 허무하게도 가장 높은 층인 5층 장서실에 실질적으로 모든 책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은 좌절감마저 느낀 나는 장서실이 어지간히 훌륭하지 않는 한, 아버지께 오늘 벌어진 이 거지같은 일들을 낱낱이 조잘거리겠노라고 다짐했었다. 당연히도 5층에 도달한 순간 입을 다물었지만.
책장에는 책이 빼곡했고 장르별로 분류가 아주 잘 되어있었다. 감히 동네 도서관에 비교하기가 민망해지는 규모로 나는 비문학 책을 이렇게 많이 보유한 서고는 본 적이 없었다.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구경했을 뿐인데도 시간은 금새 흘러 어느덧 서둘러야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때의 감동과 좋은 의미로서의 충격으로 도서관은 내가 꽤나 자주 들리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당차게 빌린 책의 책갈피는 이동하는 일이 없었다. 나는 내 전공에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반대로 대부분의 동기들은 이 분야에 정도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가기 벅찬 수업에 어쩌다 시간이 나더라도 침대에 뻗어버리거나 과제를 하느라 급급했다. 결국 1년은 그렇게 흘러갔다. 완독한 책은 교재 뿐인채로.
그렇기에 책을 꾸준히 읽는 습관을 기름과 동시에 기부도 가능하다는 해빗 클럽의 홍보글은 다시금 나의 눈을 빛나게 했다. 이제 나는 컴퓨터를 전혀 모르는 문외한도 아니었고 새로운 학기를 맞이하게 된 이상 무언가 이상적인 도전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참여하기로 한 해빗 클럽은 틀림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지금에 와서는 단언할 수 있다. 21학점이라는 상당히 빽빽한 시간표 속에서 모든 날을 채우는 것은 무리였지만 덕분에 독서를 위한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고 나는 독서를 취미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기피하던 문학에도 손을 대었고 끔찍해하던 경제에도 손을 뻗었다. 교양 수업을 듣고 나면 중앙도서관에 들러 디자인에 관한 책을 몇 번 훑어보기도 하였다. 나에게 독서란 어느덧 피로함을 이겨낼 수 있는 굉장한 즐거움이 된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이 무엇보다 뜻깊고 가치 있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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